기름값 내려가면 전기료 덜 내는 '연료비 연동제' 이 참에 해볼만

입력
2020.08.16 10:00
한전, 올 하반기 전기료 체계 개편 예정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유가격 변동을
전기료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 주목

한국전력공사가 지난 2년 여의 적자 행진을 뒤로 하고 올해 상반기 8,000억원 이상의 '깜짝 흑자'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력판매가 부진했음에도 국제유가 하락으로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가 많이 줄어든 덕분이다. 고유가가 적자로 직결됐던 2018~19년과는 정반대 상황인 셈이다.

한전은 유가에 실적이 급변동하며 재무건전성을 위협하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전기요금 체계의 '합리적 개편'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선 한전이 전기 원료 격인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대안으로 적극 검토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마침 저유가 추세인 만큼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 없이 연료비 연동제 체계로 연착륙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전날 실적발표에서 상반기 기준 영업이익이 8,204억원으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상반기 9,2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한전의 흑자 전환은 값싼 국제 유가 덕분이다. 한전은 지난해 말부터 지속된 유가 하락 덕에 연료비와 전력구입비로만 2조6,000억원가량을 줄였다.

업계는 최근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계기로 한전이 올 하반기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매가격 연동제라고도 불리는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유 등 연료 가격 변동을 전기료에 바로 반영하는 제도다. 변동하는 국제연료 가격에 따라 연료비 증감분을 전기료에 제때 반영하고 다음 달 변동 요금을 예고해 합리적인 전기 소비와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쉽게 말해 유가가 내려가면 전기료를 덜 내고 올라가면 많이 내면 된다. 지금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유가 하락이 지속될 때 일반 소비자들은 전기료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유가가 상승하면 전기료도 함께 오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유가를 예측하며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료비 연동제가 아닌 일정한 금액을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고정형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택용 전기료의 경우 3단계에 걸친 누진제라 사용 전력량이 많아질수록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일반용(공공ㆍ영업용)과 교육용(학교ㆍ박물관), 산업용(광업ㆍ공업) 등은 계절과 시간대별로 차등을 둔다.

국제유가 변동성과 괴리된 우리나라의 현행 전기료 부과 체계는 사업자인 한전의 수익성을 널뛰게 하는 요인이다. 저유가 시기였던 2015~16년 한전은 11조~12조원의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고유가 시기였던 2018~2019년에는 1조원 이상의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이에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지난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콩값(연료비용)이 올라갈 때 그만큼 두부 가격(전기료)을 올리지 않았더니 이제는 두부 가격이 콩 가격보다 더 싸지게 됐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급등락하는 국제유가 시세에 따른 전기료 왜곡을 막기 위해 국제적으로도 대다수 나라가 연료비 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산유국인 멕시코와 사우디라아라비아, 수력 발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노르웨이(96%)와 스위스(58%), 전력산업을 100% 국영화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와 이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이집트 아르헨티나 등 13개국을 뺀 대부분 국가가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유국과 화석연료 비중이 낮은 국가 외에 전기료에 연료비를 연동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 정부는 2011년에도 연동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유가 상승기와 맞물려 도입을 미루다 2014년 결국 없던 일로 했다. 이번에도 섣불리 도입하자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향후 전 세계 경기가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 살아나면 국제 유가가 다시 올라 전기료도 껑충 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전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한전은 "합리적인 전기료 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며 전기료 개편 작업 방침에는 변화가 없음을 내비쳤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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