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담장 옆 '日 헌병대장 땅'... 일본인 토지 끝까지 추적한다

입력
2020.08.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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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일제강점기 일본인 재산 국유화 한창
일제 일본인 명부 등 대조 필요해 장기간 소요
"3.3㎡ 이하 자투리 땅까지 철저히 환수할 것"


서울 종로구 종묘와 창경궁 사이 보행로에는 소유주가 '전전승(前田昇)'이라고 기록된 사유지가 있다. 면적은 6.6㎡(약 2평)로 좁지만, 조선왕조의 심장과도 같은 두 유적을 잇는 요지에 위치해 있다.

특이한 이름인 전전승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국내 성씨 중 전(全)씨나 전(田)씨는 있어도 '앞 전'자를 쓰는 전(前)씨는 없다. 이 '전전승'은 일제강점기 조선헌병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일본인 '마에다 노보루'의 이름을 음독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최근 이 땅에 대한 국유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대문구 한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도 최근까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소유자의 토지가 있었다. 이 학교 모퉁이 땅은 '제등학웅(齊藤鶴雄)'이라는 사람이 권리자였다. 이 역시 일제강점기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1936년 10월 이 부지를 매입한 뒤, 정부가 이를 국유화한 지난해 11월까지 83년간 이 땅의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

광복 75년 지나도록 일본인 땅 전국 곳곳에

정부가 광복 75주년을 맞아 전국에 남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1945년 협정에 의해 양도된 한국 내 일본인 재산)에 대해 연내 국유화를 마무리하겠다고 나섰다. 3ㆍ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일본인 귀속재산으로 의심되는 4만3,000여필지를 전수 조사한 데 이은, 일제 청산 작업의 일환이다.

올해로 광복 75주년이 됐지만 아직 환수되지 못한 일본인 귀속재산은 곳곳에 널려있다. 서울만 해도 도심 한복판인 중구와 종로구의 일부 토지에 여전히 국유화가 진행 중인 귀속재산이 많다. 마에다 노보루의 땅을 비롯해 중구 봉래동 도로(1934년 '석내미' 매매), 을지로 대지(1924년 '촌전계' 매매), 예관동 도로(1934년 '중촌효' 매매)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외 지역에도 비교적 큰 규모의 귀속재산들이 남아 있다. 경기 수원시에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향산홍' 명의로 1억4,184만원 상당 토지가 있고, 전북 익산시에도 '신원성'이라는 인물의 토지가 1,763만원 규모로 남아 국유화 과정이 진행 중이다.

2012년부터 일본인 명의 재산 국유화 업무를 맡은 조달청은 지난달까지 1,153억원(공시지가 기준) 상당의 일본인 귀속재산 4,644필지를 국유화했다. 여의도 면적 1.3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8년에 걸친 작업에도 아직 국유화하지 못한 땅이 많다. 현재까지 조사된 일본인 명의 재산 4만3,000여 필지 중 여전히 국유화 작업을 거치고 있는 곳은 3,052필지다. 이들 필지만 해도 공시지가로 따지면 최소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자료 수십만건 뒤져 대상 토지 찾아야

광복 75년이 지나도 일본인 명의의 땅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과거 정부가 이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뤄온 탓이 크지만, 국유화 작업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건축물ㆍ토지 대장이나 등기 등에서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발견될 때, 실제 일본인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일에서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1941년 기준으로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 내 430만호 중 81.5%가 창씨개명을 해서, 장부상으론 일본식 이름이더라도 실제 주인은 한국인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확한 선별 작업을 위해 조달청은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일제강점기 재조선 일본인 인명(26만명) 자료집'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1945년 당시 한국인 제적등본, 법원 행정처의 옛 등기 자료 등을 철저히 대조한다. 송명근 조달청 국유재산기획과 서기관은 "수십년 전 수기로 쓰여진 임야대장 등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탓에 특정 토지를 국유화 대상으로 확정하는 데까지는 많게는 수개월씩 걸린다"고 설명했다.

불법ㆍ편법으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소유권을 이전 받거나, 일본인이 한국인인 것처럼 꾸민 '은닉재산'의 경우에는 소송까지 거쳐야 환수가 가능한다. 조달청에 따르면 매년 30건에 달하는 은닉재산 국유화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승소율은 약 76%에 달하지만, 길게는 2년 이상의 법정 다툼이 이어지기에 부담은 만만치 않다. 최근까지 송사 등을 거쳐 국유화된 은닉재산은 11만8,350㎡(10억8,500만원 상당) 규모다.

신원 확인한 3,052필지 연내 국유화 목표

많은 노력이 뒤따르지만, 조달청은 국내에 남은 일본인 재산을 마지막 한 평까지 찾아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6월에는 한평에도 못미치는 대전시의 2㎡ 도로를 국유화 완료했고, 현재도 전북 정읍시나 전남 장흥군 등지의 2, 3㎡ 짜리 대지 수십 건을 조사 중이다.

조달청은 현재 국유화가 진행 중인 3,052필지에 대해 올해 말까지 국유화 작업을 완료하는 한편, 추가 조사 중인 1,135필지를 세밀하게 들여보고 국유화 여부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공적장부상에 여전히 일본식 이름으로 남아있는 약 10만4,000건의 부동산에 대해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와 합동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적장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조달청 조사 결과 해당 부동산이 일제시대 일본인 소유로 확인될 경우, 국유화도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이경원 조달청 국유재산기획과 서기관은 "앞으로도 누락된 귀속재산이 없도록 끝까지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김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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