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지우는 방법

입력
2020.08.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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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무덤(8.18)


몽골 장례 풍습은 신분 지위 빈부에 따라 다양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풍장(風葬)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서민들의 장례법이지만, 16세기 말 라마불교가 전승되면서 본격적으로 보편화했다.

왕족ㆍ귀족은, 울란바토르대 한국어학과 이안나 교수에 따르면, 일부 화장 후 사리탑에 안치하거나 미라 형태로 보관한 예가 있지만 대부분 매장했다. 왕이 죽으면 '델'이라는 모피 수의와 모자로 의관을 정제해 관에 안치한 뒤 흰 펠트와 금사로 짠 비단으로 관을 둘러 묻었다. 장신구를 비롯한 부장품과 말, 때로는 산 사람을 순장했다. 왕의 무덤은 봉분 없이 땅을 고르게 다졌고, 비석 등 아무런 표지도 남기지 않아 적이나 도굴꾼의 눈을 피했다. 운구에 동원된 병사는 물론이고 운구 도중 마주친 모든 사람도 원칙적으론 목숨을 바쳐야 했다. 무덤 방위를 짐작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태평양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영토를 아우른 칭기즈칸(Chinghis Khan, 1162.4.16~ 1227.8.18)은 탕구트 정벌 도중 자연사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유언으로 곡을 금했다. 알려진 바, 그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한 병사들은 매장 후 1,000여 기의 말을 타고 사방을 누벼 자신들이 머문 흔적을 감췄고, 임무를 완수한 뒤 따로 파병된 병사 800여명에게 모두 살해됐다. 동료 병사들을 처형한 병사들 역시 돌아와 목숨을 바쳐야 했다. 뭔가를 전해 들었을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몽골이 소비에트 지배에서 벗어난 1990년대 이후 일본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문헌을 뒤지고 위성까지 동원해 '그레이트 칸' 칭기즈의 무덤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물론이고, 원나라를 창건한 3대 쿠빌라이칸을 비롯한 단 한 기의 칸의 무덤도 찾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묻고 조롱했던 몽골의 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병사까지 죽여가며 명계의 안녕을 도모했다. 그들의 사후 세계는 제국의 흥망처럼 수수께기로, 전설로 남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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