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을 만큼 뛰어 오르면서, 은퇴자와 무주택자의 허탈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들을 위해 마련된 주택연금, 정책모기지 등 각종 정책형 금융상품의 수혜 범위가 집값 상승으로 앉은 자리에서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3일 금융권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집값 급등으로 정책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통해 내 집 마련을 노리던 무주택 서민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서민 대상 주택담보대출인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의 대출 한도는 많아야 3억원 수준이지만, 규제 지역에서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70%까지 가능해 무주택자의 관심이 높다. 그러나 이 상품들은 각각 주택가격이 5억원, 6억원 이하인 주택을 구매할 때만 지원된다. 요즘처럼 중저가 집값까지 전반적으로 치솟는 상황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집이 급격히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 최근에는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강북지역마저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억92만원(KB부동산 기준)으로 6억원을 훌쩍 넘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6억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2017년 5월 62.7%(78만7,277가구)에서 올해 5월 30.6%(38만2,643가구)로 절반 넘게 급감했다.
그만큼 정책모기지를 통한 서울 내 아파트 구입이 무주택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 돼 버린 셈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집값이 갑자기 뛰면서 이제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주택을 사려면 외곽의 교통이 불편하거나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 또는 빌라나 단독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고려해 정책모기지 대상 주택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 지역에서는 디딤돌대출이나 보금자리론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선택지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상태”라며 “지역의 평균 주택가액과 정책모기지 가격을 연동하는 등 현실적 시세를 고려해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주어진 재원 내에서 낮은 가격의 주택 구매자를 지원하는 것이 정책모기지 공급 취지와 부합하는 만큼 현재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이 10억509만원(부동산114 기준)으로 사상 처음 10억원을 넘어서자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하려던 은퇴자들도 한층 막막해졌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이 한국주택금융공사에 현재 사는 집을 담보로 맡기면 평생 연금식 월 생활자금을 국가가 보증해주는 장기주택저당대출이다. 집 외에 금융자산이 없는 은퇴 고령자의 주거불안을 해소하는 노후대비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부동산 광풍으로 이미 절반 이상의 서울 아파트 가격이 가입 상한선을 넘긴 상태다. 주택연금은 소득세법상 고가주택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시가 9억원 넘는 주택은 가입할 수 없다. 서울 아파트값이 6억1,978만원이던 2016년 서울과 수도권 주택연금 가입자 비중은 67.8%였지만 아파트값이 60% 넘게 뛴 올해(6월 말 기준)는 61.3%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2008년 이후 12년째 제자리인 가입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입 상한을 ‘시가’가 아닌 ‘공시가' 9억원(시세 13~15억원)’으로 바꾸는 주택금융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박성중 미래통합당 의원도 주택 가격 한도를 폐지하되 받을 수 있는 연금을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김 의원의 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고령층의 노후 불안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택금융공사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입 대상이 약 12만2,000명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주택연금 가입 요건 완화 법안이 발의됐지만 “비싼 주택에 사는 사람의 노후까지 보장해주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이 나오면서 결국 폐기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최근 집값 급등 상황을 감안해, 21대 국회에선 법 통과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