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과 수영, 공포와 역사 ... 아이와 함께 하는 특별한 여름 책

입력
2020.08.14 04:30
17면

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아름다운 추억과 감각들은 유난히 여름날의 풍경으로 떠오른다. 잔디밭 평상에 누워 주스를 마시면서 별을 보던 어느 날, 여름날 수영장 물 맛과 소독약 냄새, 물놀이 하느라 녹진녹진해진 몸의 감각, 풀벌레 소리와 나뭇잎의 쓴 맛, 초록색 나무를 통해 바라보던 파란 하늘 같은 것들.

그런데 매일 매일 비가 오는 여름을 맞은 올해의 어린이들은 여름방학을 어떤 감각으로, 어떤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까. 어린이들이 여름의 감각과 예술적 상상력이 가득 담긴 책 속 여행으로 2020년의 8월을 소중하고 특별한 여름으
로 기억하기를 바라며, 어린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책들을 골라본다.

여름날 캠핑의 추억, 김중석의 '나오니까 좋다'


장맛비가 잦아들면, 아마 캠핑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 숲 속으로 캠핑을 떠나며 꿉꿉한 마음을 털어서 말려보자. 김중석의 '나오니까 좋다'는 달라도 너무 다른 고치와 릴라, 두 친구의 여름 캠핑 이야기를 담아낸 아기자기하고 위트 넘치는 그림책이다.

“에이, 그러지 말고 가자, 바람 쐬고 와서 일하면 더 잘 될 꺼야. 나만 믿어. 내가 다할게. 응?”

코딱지를 파면서 캠핑가자고 조르는 릴라의 꼬드김에 도치는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이번 한 번만이야! 하고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낙천적이고 계획없는 릴라의 좌충우돌 캠핑에 도치는 시종일관 불안하지만, 역시 “나오니까 좋다!” 김중석 작가가 화면 가득 그려넣은 여름의 나뭇잎들과, 숲속의 작은 동물들, 그리고 여름밤의 풍경이 생생히 살아서 독자의 마음 속 이미지로 스며든다. 아이들과 함께 얼른 짐을 싸서 떠나고 싶어지는 귀여운 그림책이다.



물의 여행, 물의 시간, 이수지의 '물이 되는 꿈'


루시드 폴의 '물이 되는 꿈'을 듣고 있으면 물의 순환이라는 자연 현상에 부여된 아름다운 서사, 그리고 그 서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감상자로서의 나를 깨달으며 새삼 감동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 과학자-예술가의 힘일 것이다.

이수지의 '물이 되는 꿈'은 루시드 폴의 이 아름다운 물의 여행에 이미지와 이야기의 레이어를 더한, 공감각적이면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어린이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수중 재활을 시작한 물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물이 되는 꿈에 참여하게 된다. 작가의 자유로운 붓을 따라 물은 번지고, 파도치고 방울로 튀기고 일렁이며 넓은 바다로 넘어간다.

전작 '파도와 놀자'와 마찬가지로 푸른 색과 작가의 표현주의적인 붓터치들이 물의 시간과 감각속으로 감상자를 불러들인다. 이 책이 취한 아코디언 폴딩, 그러니까 긴 띠 형식의 이미지들은 근대의 책의 제본이나 회화에서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시각문화의 역사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예로부터 사용되어 온 형식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으며 거실 바닥에 길게 책을 펴놓고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따라가면서 감상하면 어떨까. 물론 함께 그려봐도 좋다. 나도 아이들과 ‘물의 여행’ 단원을 배울 때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여름 밤의 공포, 숀탠의 '여름의 규칙'


숀 탠의 '여름의 규칙'은 “내가 지난여름 배운 게 있어.” 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로 시작한다. 형이 동생에게 알려주는 수수께끼같은 규칙들은 도시 괴담처럼 이유를 알기 어렵다. 그리고 페이지 가득 그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듯한 미스티리어스한 일러스트들이 그려져 있다. 어둡고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 속 같은 불가해한 이미지들로 빠져들게 된다.

책에 담긴 규칙들은 온전히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그 이야기들은 어린이 독자 각자의 마음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완성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이해하기 어렵단 의견도 있지만 온전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환상과 공포의 세계란 원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름날 밤의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읽을 만한 책이다. 물론 어린이들이 악몽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장치도 갖추고 있다.



타인의 여름날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예술교육에서 작품을 통해 타인의 경험과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나 자신의 것으로 반영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를 읽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가치있는 예술적 체험이다.

이 책의 한 장 한 장은 아름다운 여름날의 감각적 체험으로 가득하다. 누구의 여름날 추억 속에나 남아있을 눈부신 유년기의 여름 체험들을 담은 회화 이미지들이 작가 시점의 이미지로 담겨져 있다. 그리고 글에 담긴 짧은 글을 통해 이것은 1939년 유럽의 어떤 나라를 살았던 어린이의 여름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 미하우 스키빈스키가 여덟 살 때 썼던 일기장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았던 작가는 어린 시절 매주 한 문장씩 일기를 썼다. 1939년 9월 17일부터 7월 19일까지 쓰여진 이 매일 매일의 그림 일기장을 넘기면서 독자들은 백 년의 시간을 넘어 교감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간 저편의 어린이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만나게 된다. 짧게 소개하기에 아쉬운 책이지만, 어린이들이 이 일기장의 날짜를 따라서 작가의 시간 길을 걷는다면 어떨까.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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