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표 늘리는 게 혁신인가” 빛바랜 정의당 혁신안

입력
2020.08.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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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방향보다는 지도체제 변화에만 골몰


82일 동안 준비한 정의당 혁신안에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 내부에서조차 "미래통합당 정강정책보다도 쇄신이 약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불분명한 정체성에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았고, 4ㆍ15 총선에서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혁신위가 총선 참패 후 당이 나가야 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지도체제 바꾸기에만 골몰해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3일 발표된 혁신안의 골자는 ‘부대표 확대 및 당대표 권한 축소’다. 혁신위는 당의 최고의결기구로 ‘대표단 회의’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출직 부대표 5인, 청년 대표로 대표단 회의를 구성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단일한 대표가 존재하되 좀 더 많은 리더십이 등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부대표단은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다. 리더십 분산은 총선 참패의 원인이 당 대표 1인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 때문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혁신안을 만든 혁신위원조차 “민심이 원하는 주제에 있어서 독자성, 선명성 등을 먼저 내거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인데 그런 것을 못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혁신안에 당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앞서 심상정 대표는 혁신위를 출범시키며 “혁신위가 준비한 혁신 과제와 발전 전략이 당 대의원대회에서 결실을 보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며 당의 전면적 쇄신을 부탁했다. 혁신위는 차기 지도부에 강령 개정을 권고했지만, 소득불평등 극복, 탈탄소경제 및 생태사회로의 전환 등과 같은 6가지 방향성을 열거하는데 그쳤다. 이를 두고도 당 내부에서는 “당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설계가 보이지 않는다”며 “통합당과 민주당이 진보 의제까지 확장하고 있는데 당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외에 이날 혁신안에는 당 내 당 형태로 ‘청년 정의당’ 창당 추진, 온라인 ‘당원입법청원 시스템’도입 등이 담겼다. 당원입법청원 시스템은 300명이상의 당원이 동의하면 입법청원을 담당할 의원을 매칭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초안에 제시됐던 당비 인하는 당원 토론 등에서 부정적 의견이 나와 최종안에서 빠졌다. 정의당은 오는 15일에 열리는 전국위원회에 이같은 내용의 혁신안을 보고하고, 30일 정기 당대회에서 최종 추인할 계획이다. 또 혁신위가 조기동시당직선거를 제안함에 따라 다음달 중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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