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문대 진학 위해 국제학교에 6,000만원 '펑펑'

입력
2020.08.20 04:30
12면
경제력 필수 "의사 자제들이 제일 못사는 축 속해"
외국인학교도 비용 상당… 컨설팅ㆍ사교육 받기도
귀족학교 논란에도 선택형 교육ㆍ교과외 활동 장점
"관리감독 강화하고 한국 공교육 개선 계기 삼아야"

편집자주

외국인학교와 국제학교는 태생부터 ‘귀족학교’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10여년전 정부는 입학과 설립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이들 학교가 선진교육의 모범을 보이며 천편일률적 국내 교육현장에서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리 온상 내지는 외국 명문대 입시를 위한 발판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태를 확인하러 학교담장 너머를 들여다봤다.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는 대안교육 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애초 국제학교는 한국의 대입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지양하고, 해외 조기유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ㆍ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외국인학교 역시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든 외국인과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제ㆍ외국인학교의 교육과정이 결국 해외 명문대가 원하는 인재상을 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등 ‘대입 스펙 관리’의 일환으로 전락했다는 의견도 있다. 또 '귀족 학교'라 불릴만큼 비싼 학비를 지불한 결과물로 명문대 졸업장을 받아 드는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겨 설립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재 중 만난 국제ㆍ외국인학교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대체로 귀족 학교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했다. 이들은 그러나 국제ㆍ외국인학교를 통해 해외 유명 사립학교의 교과 과정을 밟을 수 있고 다양한 예술ㆍ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며 "돈 없으면 들어가기 힘든 건 맞지만 비싼 값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싼 학비=귀족 학교?

국제ㆍ외국인학교에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는 귀족학교다.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비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한국외국인학교 판교캠퍼스를 다니고 올해 초 졸업한 강모(18)씨는 “(그간 낸 학비를 따지면) 학교에 건물 하나는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다닌 고등학교의 2020/2021학년도 연간 학비는 3,500여만원(한화 2,302만원+1만460달러)에 달한다. 강씨처럼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연간 3,000만원 내외의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그나마 외국인학교는 기숙사가 없어 국제학교에 비해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제주 소재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비에 기숙사비 2,000여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예를 들어 브랭섬홀 아시아(BHAㆍ제주 소재 국제학교)의 2020/2021학년도 12학년 학비는 6,390여만원(학비 4,060여만원+기숙사비 2,330여만원)이다. 통상 국제학교의 학비는 4,000만~6,000만원(기숙사비 포함)에 달한다.

사교육비까지 포함하면 학생 1인당 최대 1억원이 들기도 한다. 12학년을 내리 다닌다면 10억원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싼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 만큼 국제ㆍ외국인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야 한다. 2013~2015년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낸 A씨는 “우리 집은 병원을 운영하는데, (재학생 가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의사 자제들이 경제적으로 제일 못 사는 축에 속했다”고 밝혔다.


교과과정(Curriculum)... IB와 AP

국제ㆍ외국인학교의 교과과정은 중학교 때까지는 한국 학교와 큰 차이가 없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차별화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한국국제학교(KIS) 제주캠퍼스를 다니다가 올해 졸업한 성모(19)씨는 “초등ㆍ중학교 때까지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기본과목에 충실한 교육을 받는다”며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처럼 원하는 수업을 신청해 들을 수 있다. 그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수업 선택의 자유’는 미국과 유럽 교육시스템의 특징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관심분야와 학습능력에 따라 학생 스스로 수업을 정해 듣도록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수업 또는 교과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는 각 학교가 채택한 교육시스템에 따라 크게 IB 디플로마(IB)과정과 AP수업으로 분류된다.

IB과정은 2년간 진행하는 일종의 심화 교육과정으로, 영국 사립학교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어 흔히 영국식 교육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와 문학 △언어습득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 △예술 등 총 6개 영역으로 분류되고, 학생들은 각 영역에 속한 하위과목 중 하나씩을 선택해, 총 6개 과목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과목당 1~7점의 점수를 받고, 기타과정(소논문, 지식이론 등)에서 최대 3점을 추가로 취득해 총점 45점을 기준으로 학습능력을 평가 받는다.

AP수업은 미국 고교생들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수준의 수업을 미리 수강해 학점을 취득하는 시스템이다. AP수업은 대학에서도 학점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대학 진학 후 수업을 적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일반 수업과 비교해 이수점수에 1점을 추가로 더해준다. 예를 들어 같은 역사수업을 이수해도 일반 수업에서 A를 받으면 4.0점을 받지만, AP 역사수업에서 A를 받으면 5.0점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명문대 입시를 위해 내신평점(GPA)을 올리려는 학생들은 되도록 많은 AP 수업을 들으려고 한다.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AP 수업은 2019년 기준 총 38개다.


교과외 활동... 운동, 게임 동아리 만들기도

교과외 활동도 한국 공교육과는 다르게 운영된다. 국제ㆍ외국인학교 학생들은 계절별로 정해진 방과후 스포츠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가을에는 크로스컨츠리와 배구 △겨울에는 농구와 치어리딩 △봄에는 축구, 배드민턴, 수영 중 한 종목을 선택할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예술, 토론, 방송제작 등 다양한 교과외 활동이 진행된다. 지난해 한국외국인학교 판교캠퍼스를 졸업한 이모(20)씨는 “학교에서 ‘오버워치’ 등의 게임을 할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선생님들이 존중해줬다”며 “한국 일반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외국인학교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한 외국인학교를 졸업한 민모(19)씨 역시 “고등학교 때 합창단 활동을 했는데, 지난해에는 ‘외국인학교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입 사교육ㆍ컨설팅으로 수억원 들기도

문제는 이 같은 활동이 결국 해외 명문대 진학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학 입시에 매몰된 한국 교육시스템의 폐단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외국인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미국 대학입학 시험인 SAT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닌다”며 “(AP 수업 등) 혼자서 공부할 수 없는 과목도 있어서 보통 학원을 세네 개씩 다닌다”고 설명했다.

대입 컨설팅을 꾸준히 받는 학생들도 많다. 수도권 소재 국제학교의 한 졸업생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삼고 몇 년에 걸쳐 컨설팅을 받는 친구들도 있는데, 비용이 수억원씩 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에서 국제학교 관련 컨설팅 업체를 운영 중인 박모(50)씨는 자녀의 국제학교 입학 상담을 요청한 기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AP수업을 7개 정도는 들어야 한다” “교과외 활동 중에 운동부 주장을 맡고, 동아리를 직접 만들면 (입시에) 더 유리하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남미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환경보호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대입 에세이에 ‘먹히는’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컨설팅 비용은 한시간에 30만원 정도였다.

컨설팅뿐 아니라 국제학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도 성행하고 있다. 강남에서 만난 다른 컨설턴트는 “국제학교 입학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며 서울 소재 유명 영어학원과 귀국한 유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어학원을 특정해 추천했다.

이처럼 비싼 학비나 사교육ㆍ컨설팅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국제ㆍ외국인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풍토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한국 공교육의 제도적 문제점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홍섭근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에선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제도를 운영 중인데 반해, 한국 공교육은 공급자 중심의 제도”라며 “돈이 많이 들더라도 학생 선택형 교육제도가 해외 대학 입시에 유리하기 때문에 국제ㆍ외국인학교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제ㆍ외국인학교 제도는 수요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수는 없다”며 “취지에 반하는 운영상의 문제점이 있다면 당국의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이성택 기자
이혜인 인턴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