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복 시위' 벨라루스서 야권 후보 리투아니아行

입력
2020.08.12 00:31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현직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 시위가 격화하는 벨라루스에서 야권 유력 후보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 리투아니아로 피신했다. 티하놉스카야가 지지자들을 향해 시위 중단을 호소하는 수상한 동영상까지 공개돼 그가 당국의 압력으로 고국을 등지게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리투아니아 외교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티하놉스카야는 안전하다. 현재 리투아니아에 있다"고 밝혔다. 9일 열린 대선에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80.08% 득표율로 6연임에 성공했다. 야권 후보 티하놉스카야는 10.09%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티하놉스카야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당국에 체포된 반체제 성향 유명 블로거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부인이다.

티하놉스카야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복 입장을 밝혔다. 독재 정권의 불법ㆍ편법 선거와 맞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방문해 선거 결과가 잘못됐다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동영상에서 그는 "벨라루스 국민들이 분별력을 발휘해 법을 존중할 것을 호소한다. 나는 피와 폭력을 원치 않는다"며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위대에게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도록 경찰에 맞서지 말고, 광장에 나오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도 했다. 출국 사실을 공개하면서는 "이 결정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내렸다"고 강조했다.

측근들은 티하놉스카야가 진정서를 낸 뒤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당국이 그를 붙잡아 동영상을 찍도록 강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티하놉스카야의 대리인은 그가 출국하는 조건으로 앞서 체포됐던 선거운동본부장이 석방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린케비치우스 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티하놉스카야가 진정서를 접수한 뒤 벨라루스 당국에 7시간 동안 억류돼 있었고 아침 무렵 국경을 넘었다"고 전했다. 그가 추방된 것인지에 대해선 "자신의 의도로 벨라루스를 떠난 것 같지는 않다"면서 "선택지가 그것뿐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이후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결과에 반발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날 시위에서는 참가자 1명이 손에 든 폭발물이 터지며 사망했고, 다수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인원도 3,000명에 달한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과 섬광탄을 발포하며 해산에 나섰고, 일부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티하놉스카야의 망명과 시위 중단 호소에도 저항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애초부터 티하놉스카야 본인 혹은 대선 캠프 주도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시위이기 때문이다. 영국 BBC방송은 "벨라루스 유권자들에게 티하놉스카야는 변화의 상징이자 통로일 뿐, 지도자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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