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주머니도 딸 키우는 부모지 않습니까. 준희는 이 추운 겨울, 그늘진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그 아이를 볕 드는 양지에 묻어줄 수 있게 저를 한 번만 믿고 최면 수사에 응해주세요."
눈이 왔더라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됐으련만, 추적추적 가랑비만 무심하게 내리던 2017년 12월 25일 늦은 밤이었다. 전북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소속 프로파일러 박주호(47) 경위는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전화로 한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라진 다섯살배기 고준희양을 찾기 위해 그가 매달릴 곳은 이 아주머니의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고 아주머니를 설득한 때를 떠올리던 박 경위는 천천히, 3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애가 없어졌어요."
준희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처음 경찰에 접수된 것은 그 해 12월 8일이었다. 준희의 계모 이모(35)씨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며 112에 신고 전화를 걸어왔다. 신고에 따르면 20일 전인 11월 18일 낮 12시쯤 이씨가 시장에 간 사이 집에 혼자 있던 준희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왜 20일이나 지나서 신고를 했냐?"는 경찰의 물음에 이씨는 "별거 중인 준희 친아버지가 데려간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준희의 양할머니 김모(61)씨도 "애가 자주 혼자 밖을 나갔다. 그래서 혹시 몰라 옷을 따뜻하게 입혀놓고 외출한 사이 애가 사라졌다"며 아이가 자발적으로 나가 실종됐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사라진 준희를 찾기 위해 전북 일대 경찰이 총동원됐다. 형사 100여명이 사건에 긴급 투입돼 실종 추정일 전후 20일간의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에 들어갔다. 3,000명의 인원에 경찰견까지 투입돼 일대 저수지와 야산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준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신고 접수 일주일만인 12월 15일 '고준희양 실종 사건'을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 전주시 전역에는 '실종 아동을 찾습니다' 포스터가 걸렸다. 뉴스에선 준희의 사진과 함께 "최대 포상금 500만원"이라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지만, 쓸만한 제보는 없었다. 그렇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나 싶었다.
한편 실종 신고 접수 3일째인 12월 10일부터 이 사건에 투입된 박 경위는 '이 사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가족들 진술에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터라, 수사 초기 경찰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가족들 주장대로 준희가 스스로 나갔다면 이웃 중 누군가는 준희를 봤을텐데, 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당시 준희는 계모 이씨, 양할머니 김씨, 배다른 남동생과 함께 전주시 덕진구의 한 빌라에 살고 있었다. 친아버지 고모(36)씨가 준희 친모와 이혼 소송 중에 이씨와 살림을 차렸는데, 이후 이씨와의 사이가 틀어져 잠시 별거 중인 탓이었다.
경찰이 가족들과 이웃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준희는 이 집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양할머니와 계모가 준희를 이뻐할 리 만무했다. 할머니는 늘 인스턴트 식단으로 밥을 줬고, 준희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했다고 한다. 임신 6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던 준희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 병원 치료가 필요했지만, 2016년 9월을 마지막으로 준희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박 경위는 천천히 이들의 진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계모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실종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길게 묘사한 반면, 준희의 실종시점이나 경위는 짧게 설명하는 데 그쳤다. 이씨는 준희를 "보통 체격에 사시, 앞 윗니가 빠져 있는 계란형 얼굴"이라며 무미건조하게 묘사했다.
할머니 김씨도 "(준희를 데리고 있으면) 창피해서 주변에 말도 못 한다"며 부정적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 고씨는 준희에 대한 관심은커녕 새 부인 이씨와 화해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검사 요청을 거부하는 등 뭔가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 경위는 이를 바탕으로 12월 20일 3명의 심리와 역학 구조를 분석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작성해 윗선에 제출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피상적 양육 태도를 가진 양육인에 의한 범행 가능성 높음"이었다. 그가 볼 때 이 사건은 실종이 아니라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은 이 보고서와 그간의 수사내용을 토대로 이틀 뒤인 22일 이들을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 본격적인 강력사건 수사에 돌입했다. 가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추정된 실종일인 '11월 18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관건은 "준희가 진짜로 사라진 건 언제냐"였다.
아버지와 계모, 양할머니 모두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기댈만한 건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뿐이었다. 경찰이 최우선으로 접근한 목격자는 준희네 집 이웃에 살던 주부 A씨였다. 수사 초기 탐문 조사에서 A씨는 준희를 마지막으로 본 건 7~8월인 여름이었다고 진술했다. 준희의 마지막 모습이 반팔을 입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피의자들은 준희를 사실상 집안에서만 양육했는데, 외출이 거의 없는 준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은 A씨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흐릿한 A씨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박 경위가 꺼낸 든 건 '최면'이었다. 박 경위가 크리스마스 저녁, 전화기를 붙잡고 A씨를 설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의 간곡한 호소가 최면을 믿지 않던 A씨의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 A씨는 이틀 뒤인 12월 27일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났다. "그래도 못 믿겠어요"라며 의심을 거두지 못하던 A씨는 결국 암막이 쳐진 사무실에 박 경위와 마주 앉았다.
박 경위는 "최면수사의 성패는 검사자와 피검사자의 거리감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내면 깊숙한 기억을 꺼내려면, 피검사자인 A씨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려야 했다. 박 경위는 A씨와의 라포(rapport, 친밀감) 형성을 위해 최면 전 수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순간 A씨와 박 경위는 오랜 친구라도 된 것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당연히 최면에서 나온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돼요. 하지만 최면은 분명히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수사기법 중 하나에요. 최면을 통해 되살린 기억이 맞는지 하나 하나 따져 나간다면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어요." 박 경위의 설득에 A씨가 눈을 감자 최면 수사가 시작됐다.
아뿔싸, 분홍 머리끈! 박 경위는 며칠 전 준희의 유전자 정보(DNA) 확보를 위해 고씨의 집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A씨가 묘사한 바로 그 머리끈을 거기서 본 것이다. 박 경위는 A씨의 최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최면에서 깨어난 A씨는 "정말 준희를 마지막으로 본 건 4월이었네"라며 놀라워했다.
경찰은 이 '4월 25일'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가족들 동선을 추적, 준희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경찰은 곧 이들 가족이 4월 28일 경남 하동군의 한 펜션에 가족여행을 간 사실을 파악했다.
"묘하게 시점이 딱 맞아떨어졌어요. 마치 큰일을 끝내고 다같이 축하여행이라도 떠난 것마냥. 28일 하동 펜션에 준희가 없었다면, 준희의 예상 실종 일자를 4월 26~28일로 좁힐 수 있었어요." 생각에 잠긴 형사과장이 그를 다시 불렀다. "박 프로, 내일 그 하동 펜션에 한 번 가줘야겠어."
"4월이요? 반년이나 지났어요. 손님이 한두명이 아닌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기억하겠습니까?"
2017년 12월 28일 오후 하동군 펜션 주인 B씨는 준희 가족들의 사진을 내민 박 경위를 보고 "기억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형사 한 명과 급하게 차를 몰아 여기까지 왔건만,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박 경위는 B씨를 설득해 펜션 바로 옆 콘테이너박스에 임시로 암막을 친 뒤 다시 한 번 최면을 시작했다.
박 경위는 "그 때 '2017년 4월 26~28일 사이 준희에게 분명히 무슨 일이 생겼고, 그 이후 준희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이 '3일'에 수사 역량을 집중했다. 당시 피의자들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는데, 수상한 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4월 27일 새벽 전북 군산시 한 인적 없는 야산에 아버지 고씨와 할머니 김씨가 함께 방문했던 것이었다. 그 야산은 고씨의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집안의 선산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두 사람이, 늦은 밤 집에서 먼, 인적도 없는 야산에 같이 갔다라. 의심이 갈 수밖에 없죠."
경찰은 피의자들의 꼼짝할 수 없게 수사 내용을 들이밀며 고씨와 이씨, 김씨를 몰아붙였고, 결국 이들의 자백을 받았다. 27일 새벽 준희를 그 선산에 묻었다는 자백. 즉시 10여명의 과학수사대원들이 출동해 예상 매장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차가운 땅 속에서, 8개월 넘게 잠들어있던 준희의 시신이 발견됐다. 12월 30일 자정쯤이었다.
"지금까지 수백건의 살인사건을 다뤘어요. 토막 살인 등 온갖 잔인한 시체를 봐도 우린 아무렇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강한 경찰관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어요. 어린 아이, 준희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아이가 변을 당했을 때에요. 한달 동안 전북 경찰이 여기에 죽을듯이 매달린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나중에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전주지법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고씨는 2017년 4월 10일 준희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준희 발목을 수차례 짓밟았다. 준희의 복숭아 뼈에 고름이 생기고 종아리, 허벅지가 검게 부어올랐지만 고씨와 이씨는 준희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준희는 4월 20일부터 혼자서 걷거나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이후에도 학대는 계속됐다. 고씨는 4월 24일 준희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준희의 옆구리 등을 발로 차고 짓밟았고, 준희는 결국 26일 오전 갈비뼈 골절로 인한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했다. 부부는 4월 27일 김씨와 공모해 군산시 한 야산에 준희를 암매장했다. 김씨가 차에서 망을 보는 동안, 고씨는 삽으로 땅을 팠다. 이들은 이후 양육수당을 신청하거나 준희 생일 전날인 2017년 7월 21일 케잌을 사거나 미역국을 준비하는 등 허위 실종 신고를 위한 준비를 했으며, 12월 8일 112 신고를 통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그들의 완전범죄 계획은 최면 수사와 경찰의 치밀한 동선 분석을 통해 완전히 무너졌다. 이웃 주민들의 기억을 속이기 위해 7개월을 기다린 것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반인륜적 범죄"라며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 고씨에 대해 징역 20년, 계모 이씨에 징역 10년, 할머니 김씨에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