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사이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한 지 두 달여가 지나면서 남북관계 복원 숙제를 받아든 새 외교안보라인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완강한 북한 당국을 돌려세우기 위해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중심 교류협력을 재개해 '낮은 단계의 관계 회복'부터 꾀하는 모양새다. 다만 북한의 호응 여부가 미지수여서 통일부의 답답함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12일 복수의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측은 남북 당국 간 교류협력사업을 당분간 재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 이후 남측 정부에 직ㆍ간접적으로 알려왔다. 당분간 북미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에 따른 5ㆍ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쪼그라든 남북교류협력사업 재개 가능 여부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측에 쌀 5만톤(2017년산)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한 계획도 북측의 불신을 부추겼다는 시각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남북 간 교류 협력은 10년 넘게 막혀 있는데 정부가 대북 지원을 떠들썩하게 자랑해놓고 묵은 쌀이나 중국산 물품을 보낸다고 하니 북측 불만이 컸다"며 "북한은 '김정일 시대'와 같은 수준의 남북교류협력이라면 안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태도가 완강하다 보니 새 외교안보라인은 민간단체ㆍ지자체 중심의 교류협력 등 우회로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는 남북 물물교환 방식의 '작은 교역'이 대표적이다. 남북의 민간단체가 중국 중개회사를 통해 술과 설탕 등의 물품을 교환하면 현금이 아닌 현물이 오가 '벌크캐시(대량현금)' 이전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중국을 통해 물자를 수송하면 육로운송과 달리 남측 당국이 유엔사와 협의하며 시간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남북 도시 결연' 구상도 정부 주도 색채를 뺀 아이디어다. 임 특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주도로 남북한 30개 도시가 결연을 맺어 농업ㆍ산림ㆍ보건의료 등 생활협력사업을 추진, '남북대화 창구'를 가동한다는 복안이다.
현재 속도를 내는 남북 협력 사안들도 지자체가 중심이다. 경기도는 민간단체인 남북경제협력연구소와 협력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물품인 진단키트, 방호복, 열화상감지기 등을 북측에 곧 보낸다. 특히 경기도는 북한 남포와 평안남도 지역과의 인도적 협력에 속도를 내기 위해 온실 건설용 자재 36만8,000달러(4억3,000만원) 지원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지난 4일 미리 받았다.
정부가 일종의 '창의적 해법'으로 남북관계 돌파를 시도하고 있지만,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신뢰 회복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몇몇 교류협력사업 문이 열린다고 해서 북한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한 대북민간단체 대표는 "방북을 금지하고 있는 5ㆍ24 조치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 '인도적 협력을 하자, 작은 교역을 하자'는 식으로 나오면 북한 입장에선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과 판문점선언 비준부터 속도를 내야 설득력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