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기업의 곳간은 쪼그라들고 있다. 개인은 대출이자가 늘었고, 기업은 영업손실을 기록한 탓에 자금 형편이 나빠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은행 국내총생산(GDP)통계 소득계정을 이용해 '가계·기업·정부 순처분가능소득 추이'를 분석한 결과 가계 소득 상승률은 4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기업소득 역시 4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한경연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순처분가능소득(세금·사회부담 등 재분배를 거친 후의 가처분소득)은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1975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로, 1998년 외환위기(2.8%)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3.5%) 당시 보다도 낮다. 해당 통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에서 26위로, 한국보다 상승률이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1.1%), 일본(1.5%) 뿐이었다.
한경연은 가계소득의 증가의 둔화 요인으로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부담 상승과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를 꼽았다.
이자소득에서 이자지출을 뺀 순이자소득의 마이너스폭은 전년도 4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한경연은 "저축의 주체로 인식돼 온 가계의 순이자소득이 2017년 통계작성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으며, 그 폭이 확대 추세"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들도 사업여건이 악화돼 영업이익이 2.2% 줄어들었다.
반면 세금 등 사회부담금이 늘어난 것도 가계소득 증가를 둔화시켰다. 가계 소득 증가의 핵심인 임금 인상률은 2015년 6.9%였으나 지난해에는 3.5%에 그쳤다.
기업의 순처분가능소득은 4년 전으로 회귀했다. 2017년 193조1,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급락해 지난해에는 158조5,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2015년(158조2,000억원)과 비슷한 수치다. 기업소득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영업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경연에 따르면 기업 영업잉여는 2018년 1.2%가 줄었고, 지난해는 감소폭이 8.3%로 확대됐다. 이 같은 추세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1%→2009년 5.3%), 유럽 재정위기(2012년 0.3%) 등 대형 악재 속에서도 플러스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정부의 순처분가능소득 증가세는 가계와 기업에 비해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부의 순처분가능소득은 404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0.2% 줄었으나, 2010년 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상승률은 5.5%로 가계(4.2%), 기업(0.8%)에 비해 높았다. 정부 재정이 성장한 배경은 가계·기업의 소득세·법인세 등 세금 및 사회부담금이 이 기간 연평균 8.1%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경연은 분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지난해 기업과 가계가 소득 둔화 또는 감소로 어려웠다"며 "기업·자영업자 등 생산 주체들의 활력 위축이 결국 가계 소득 둔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