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난이 '빌라'로 옮겨 붙고 있다. 비싼 전셋값을 피해 이주하려는 아파트 세입자가 늘면서, 연립ㆍ다세대주택 전세 수요까지 크게 늘어난 까닭이다. 빌라 전세를 사는 청년들은 이미 임대료 걱정이 한가득이다. 지금은 연쇄적인 주거 하향이동 행렬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9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연립ㆍ다세대주택 전세수급동향지수는 전월 대비 3.7포인트 높은 102.3로 높아졌다. 수급동향지수가 100을 넘으면 공급보다 수요가 우위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매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이 지수가 100을 넘긴 건 2017년 9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공급이 부족해지자 임대료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연립ㆍ다세대주택의 중위 전셋값은 전월보다 52만7,000원 오른 1억6,826만2,000원이었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2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거래는 줄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전세 계약을 맺은 연립ㆍ다세대주택은 4,966건이었다. 1년 전보다 640건, 전달보다는 18.04% 줄어든 규모다. 전세 거래는 세입자가 신고한 확정일자를 기준으로 집계돼 거래량이 더 늘 수 있지만, 줄어든 추세를 바꾸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파트 전세난의 영향이다. 작년부터 58주 연속 상승 중인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상승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A씨는 "치솟는 아파트 전셋값을 피하려고 빌라 전세 매물을 찾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전국의 연립ㆍ다세대주택 전세수급동향지수도 전월 대비 2.4포인트 오른 93.5였다. 역시 2018년 4월 이후 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중위 전셋값도 전달보다 17만원 상승한 1억481만6,000원을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방에서도 빌라 전세난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빌라 전세난의 충격은 주로 무주택 청년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6월 발표한 지난해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20~34세인 청년 가구의 연립ㆍ다세대주택 거주 비율은 13.0%에 달한다. 서울 및 수도권에 한정하면 18.8%로 더 높아진다.
특히 갓 상경한 사회초년생은 더 난감한 처지다. 이달 초 경남 진주시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긴 이모(29)씨는 "진주에서는 전셋값 6,500만원인 공급면적 43㎡ 신축 빌라에 살았는데, 서울은 훨씬 작은 원룸이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70만원(전세 1억8,800만원 수준)이다"며 "지금껏 임대료 걱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벌써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빌라 전세난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연립ㆍ다세대주택은 아파트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주로 서민들이 임차해서 살던 곳"이라며 "현재 임대차 시장은 저금리와 세금 부담, 임대차 3법에 따른 공급 단절 등으로 당분간 임대료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빌라도 그 영향을 계속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