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하면 위암 걸린다" 중국의 90만원짜리 '여자 예절학교'

입력
2020.08.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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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ㆍ전통문화 내세워... 봉건제 남녀차별 조장
"때리지 않고, 대꾸 않고,  순종하며, 이혼 안한다"
지난 10년간 단속에도 근절 안돼... 수백개 운영
부모 조급증에 비윤리적 상술 겹쳐...가치관 왜곡


"음란하면 위암에 걸린다, 행실이 방탕해 컬러렌즈를 낀다."

지난달 25일 중국 산둥성 취푸시에서 열린 '햇살 청소년 국학여름캠프'. 랴오닝ㆍ후베이성 등 중국 각지에서 모인 22명의 어린 학생들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단발머리 소녀의 동영상을 쳐다보고 있다. 이들은 방학을 맞아 국학과 전통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자의 도리'를 주입하고 세뇌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이른바 '뉘더반(女德班)'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랴오닝성 푸순시 전통문화연구회는 3년 전 저속한 교육 내용으로 적발돼 문을 닫았지만 자리를 옮기고 이름을 바꿔 또다시 돈벌이에 나섰다. 부모들이 연구회가 아닌 개인계좌로 입금한 15일 교육과정 비용은 1인당 5,250위안(약 90만원)에 달했다. 아이와 동행한 13명의 보호자도 1,500위안(약 25만6,000원)씩 냈다. 캠프를 한 번 운영하고 2,300여만원을 챙긴 셈이다.

뉘더반은 지난 10년간 독버섯 같은 존재였다. '맞아도 때리지 않고, 욕먹어도 대꾸하지 않고, 견디고 순종하면서,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는 4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남녀차별을 부추기고 봉건제의 잔재나 다름없는 폐습을 근절하고자 당국이 단속에 나서도 매번 감시 사각지대에 똬리를 틀었다. 2013년 쓰촨성, 2014년 광둥성, 2017년 허베이성, 2018년 저장성 등 중국 전역에서 적발될 때마다 사회문제로 부각됐지만 이내 경계의 눈초리는 시들해졌다. 교육 대상은 5세부터 40세까지 천차만별이었다. 2017년 기준 전국에 600여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의 국부 마오쩌둥(毛澤東)은 일찌감치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이 창당 때부터 내건 남녀평등은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초대 헌법에도 명시됐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중국은 106위로 한국(108위), 일본(121위)보다 순위가 높아 더 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부모의 경솔한 선택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봤다며 신중한 판단을 당부하고 있다. 한 부모는 펑파이신문에 "기나긴 여름방학 동안 집에서 공부도 안 하는데 예절이나 배우라고 캠프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중국에 유행한 국학 열풍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문화를 체험한다는 설명만 믿고 등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아이들이 휴대폰 게임에만 탐닉하면서 규범의식이 흐려져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조급증을 재촉했다. 비윤리적인 상술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푸뉘바오(婦女報)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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