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5 총선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선거 당시 당이 드러낸 가장 큰 한계로 ‘독자성ㆍ차별성 부족’을 지목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의당 지지층은 당이 진보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더욱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 필요성도 여전히 유효한 반응이었다. 가장 적절했던 총선 메시지로는 ‘n번방 관련 입법 촉구’가 꼽혔다.
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제21대 총선 정의당 투표자 심층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정의당이 21대 총선 활동을 잘 했냐’는 질문에 ‘잘 못했다’는 응답이 59%로 ‘잘했다’(41%)는 답보다 앞섰다. 특히 부정 평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독자성과 차별성이 부족했다’를 꼽은 응답자가 39.7%로 가장 많았다.
정의당 성장 전략 1, 2순위를 묻는 항목에서 1위로는 ‘독자노선 강화’(70.4%)가 꼽혔다. △대중성 확대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 강화 △진보대연합을 통한 세력 확대 등은 그 뒤를 이었다. ‘선명성’과 ‘대중성 확장’ 중 양자 택일의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응답자들은 ‘대중성을 확장해 수권정당이 돼야 한다’(40%)는 전략보다 ‘소수정당이 될 지라도 선명한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60%)는 쪽에 손을 들었다.
선명성의 방향은 역시 노동자와 약자 대변을 통해 이뤄야 한다는 견해가 뚜렷했다. 당이 가장 대변했으면 좋겠다고 보는 계층으로는 노동자(52.7%)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청년(14.9%), 여성(9.3%), 중소자영업자(7.1%), 빈민(4.5%)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적절했던 총선 메시지로는 'n번방 입법 촉구 메시지'(100점 만점에 73.4점)가 꼽혔다. 가장 적절했던 총선 공약으로는 '전태일 3법'(76.8점)이, 향후 집중해야 할 입법 과제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76.7점)이 지목됐다
당 내에선 이런 결과를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류가 번진다. 이달 말 완성을 목표로 마련 중인 혁신안에서도 '선명성' 강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선명성 강조’의 방법론이 논의의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당 정체성 혁신’ 과제를 다음 지도부로 넘긴 탓이다.
혁신위는 지난달 발표한 혁신안 초안에서 ‘2021년 상반기까지 강령 개정을 차기 지도부에 권고한다’고만 했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표방한 기존 강령의 시효가 끝났다는 데는 뜻을 모았지만, 이후 정의당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과 노선에 대해서는 대중정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서 낸 결론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한 혁신위원은 “정의당의 색깔이 퇴색되고 있다거나 노동자를 더 충분히 대변하는 정당이 됐으면 좋겠다는 조사 결과를 당이 가장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혁신의 초점이 온통 지도체제 변화로만 몰리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