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연구원도 법원 일원... 스스로를 대변할 조직 필요하죠"

입력
2020.08.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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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필 서울고법 재판연구원 협의회 회장
"임기제 공무원 한계에 고충 얘기할 곳 없어
앞으로 권익 보호·제도 자문 수행할 것"

재판연구원(재판부의 일원으로 법관을 돕는 전문임기제공무원) 제도 시행 9년차인 올해, 서울고법에는 사상 첫 재판연구원 협의회가 설립됐다. 지난달 15일 워크숍에서 소속 연구원 114명이 직접 위원 8명을 선출했고, 초대 회장에는 천재필(36·사법연수원 47기) 연구원이 뽑혔다. 2015년 제57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그는 지난 3년 간 형사, 행정, 민사 재판을 두루 경험한 최고참 연구원의 경륜을 인정받았다.

여전히 법원의 '주변인'에 머무는 로클럭

5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만난 천 회장은 "재판연구원은 국민 송사에 직접 관여하는 법원 구성원이지만 그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가 없었다"며 협의회 설립 의의를 설명했다.

재판연구원 제도는 사시나 변시 합격자를 바로 법관으로 뽑지 않고 일정 경력 변호사 자격자 중 법관을 선발하는 '법조일원화'와 함께 도입됐다. 법관은 연륜을 바탕으로 판단에 집중하도록 하고, 사실 관계 정리나 법리 검토는 연수원이나 로스쿨을 갓 졸업한 재판연구원에게 맡긴다는 취지다. 현재 300명의 재판연구원이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판연구원들은 재판 주요 쟁점에 관한 의견을 내고, 이 의견은 실제 판결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수의 판사들도 "재판연구원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고 평가한다. 천 회장은 "단순히 재판부 지원에 그칠 뿐만 아니라 재판연구원 대부분이 '내 사건'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엄연한 법원의 구성원이지만 "사무실이 덥다, 춥다" 등 사소한 어려움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고 한다. 판사도, 일반 법원 공무원도 아닌 애매한 위치 때문이다. 최대 3년의 임기제 공무원이다 보니 스스로를 '법원 주변인'으로 생각하고 얘기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었단다.

임기 늘면서 연봉 삭감... 조직 필요성 커져

천 회장은 "하지만 최근 재판연구원 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고 연구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대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 국회는 연구원의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고, 정원도 2022년까지 200명에서 300명으로 늘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임기와 정원이 늘었음에도 예산은 늘지 않아, 지난해 채용된 연구원부터는 10% 정도 연봉이 삭감됐다. 임기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근로조건에 변화가 생긴 만큼,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모을 필요가 생긴 것이다.

사실 협의회 구상은 김창보(61·14기) 서울고법원장의 제안에서 나왔다. 법원도 연구원 제도를 개선할 때 자문받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소 협의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각자 업무가 바빠 협의체를 실현시킬 구심점이 없었던 재판연구원들도 김 법원장의 제안에 적극 호응했다고 한다.

출범 한 달여를 맞이한 현재 회장 포함 8명의 위원들은 연구원들의 크고 작은 건의사항들을 접수·정리하느라 분주하다. 협의회를 자율적,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내규를 개정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 내규는 법원 규칙에 따라 서울고법 운영위원회 소속 판사들이 만들었다.

천 회장은 "법원장 아이디어라는 점 때문에 '형식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위원들 모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할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체채팅방에 불이 날 정도로 위원들끼리 하루에도 수십통의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연구원 생활이 법조 경력의 큰 자산이라는 걸 몸소 느낀다"며 "연구원들이 이 경험을 행복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봉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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