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전통으로서 유교, 타율적 도덕으로 이 땅을 구한다?

입력
2020.08.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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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연재] <16> 유교랜드에 다녀왔다

편집자주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찾아 나가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안동을 여러 차례 답사한 적이 있지만, 2013년에 문을 연 안동의 유교랜드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자학(自虐)의 충동이 일어날 때 가려고 미루어 두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지난달 말, 유교랜드에 대한 신문 기사가 하나 떴다.

“혈세 축내는 유교랜드”라는 제하의 기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대는 공공시설 현황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유교 관련 테마파크를 표방한 유교랜드의 경우, 430억의 국비를 들여 설립했지만, 입장객이 얼마 없어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그 기사가 나가자 SNS에는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안동 유교랜드ㅋㅋㅋㅋㅋㅋ 정신 차려 이 사람들아,” “1년 입장객 수업이 2-3억원에 그쳤다는 뉴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저런 델 갔을까 싶어서,” “일종의 정신지체 현상이에요,” “와, 돈 받고도 안 가게 생겼네,” “이름도 웃기다, 유교랜드,”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고 싶으면 유교랜드를 가보라고,” 등등. 유교랜드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반응에 마주하자, 유교랜드에 꼭 가봐야 한다는 결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 불끈 솟아났다. “어떤 미친놈”이 기어이 되어주고 싶다는 욕망, 꼭 가서 기어이 입장료를 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가야 한다. 반드시 가 보야 한다. 가보지도 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직접 가서 한국 테마파크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고 싶으면 가보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다룬다는 한국일보의 연재 '한국이란 무엇인가'에 딱 들어맞는 대상이 아닌가.



막상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독한 답사가를 자처하는 사람이었건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비용을 내가 댈 테니 함께 유교랜드에 갑시다! 이 너그러운 제안을 가족도 조교도 모두 거부했다. 싫어요! “너님”이나 가세요!

그러나 세상에는 인류학적 탐구욕을 가지고 먼 곳과 옛것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둘쯤은 있는 법. 그들과 의기투합하여, 아침 일찍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회동했다. 일행 중 아무도 테마파크에 데려갈 만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테마파크라는데 왜 입장객이 그렇게 없다는 걸까요? 아이들을 데려가서 놀면 되지 않나요.” “이런 테마파크에는 일종의 역사체험이라고 해서 회초리 체험 센터같은 게 있대요. 아이들이 과연 회초리 맞으러 따라나서겠어요?” “설마, 정말 그런 게 있을라구요.”

안동 지역에 진입하자,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표어가 보였다. 2006년에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브랜드를 안동시가 특허청에 등록하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란 역사적 의의가 담긴 표현이다. 관직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고장이라면, 정치적 수도인 한양에 경쟁할 수 있는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말을 붙여볼 만도 하지 않은가. 많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팻말을 거쳐 마침내 유교랜드에 도착했다. 입장객을 맞는 간체자 중국어 안내를 보며, 예상 고객의 상당수가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교랜드 내부는 일정한 순서를 따라 관람하게끔 되어 있다. 제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오토바이를 옆에 두고 청소년 마네킹들이 서 있는 모습이다. 그들 옆에는 “14세 미만 소년범 5배로 급증”이라는 글이 붙어있다. 즉, 유교랜드의 세계는 도덕이 땅에 떨어진 난세를 개탄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라고 묻는 형광 글씨가 나타난다. 이어서 청년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혼란스러운(?) 세태 묘사가 나온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인가”라는 형광 글씨가 나타난다. 이어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 형광 글씨가 나타나고, 주변에 청소년 비행, 환경 문제, 기아 문제, 테러 문제 등을 나타내는 여러 비관적인 사진들이 잔뜩 붙어있다. 이 사진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대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나타낸다.

유교랜드는 절망하지 않는다. “유교, 그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서”라고 쓴 형광 글씨가 나타난다. 마침내 대안을 제시한다. “왜 하필 이익을 논하십니까?”(何必曰利)라는 맹자의 말이 적혀 있다. 탐욕의 제거,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라는 윤리적 실천을 통해 세계의 여러 부정적인 모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실제로 작동했던 과거 사회는 단순히 그러한 도덕률의 선양과 탐욕의 절제로만 유지되지는 않았건만, 소위 유교의 의의를 연구하는 많은 현대 학자들은 현대의 제반 문제를 그런 도덕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적 메시지는 과거의 사상과 문화의 실제를 닮았다기보다는,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도덕적 조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상당수 현대 지식인들을 닮았다.

한층 더 올라가면, 영상상영관이 나온다. 상영물의 제목은 “인의와 예지의 도깨비 나라”이다. 지금은 상영 시간이 아니라기에 직원에게 영상물의 줄거리만 물어보았다. 어른 말을 안 들으면 도깨비가 아이를 혼내주는 스토리라고, 직원이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과거 안동 지역에 유행했던 주자학이라는 사상 체계는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 때문에 도덕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건만, 이 영상물은 결국 보상체계를 통해 아이들에게 도덕을 주입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점에서 주자학보다는 보상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려는 현대의 많은 논의들을 닮았다.



맨 위층에는 심청이 코너가 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심청이라고 해요. 이제 곧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용왕님께 제물로 바쳐질 몸이랍니다. .... 아버지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으니까요....아, 이제 곧 배가 출발하려나 봐요. 여러분도 배에 타실 건가요?” 타고 싶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지하층으로 내려오니, 휴식하는 입장객들을 위한 서가가 있었다. 각종 위인전, 역사책 등과 함께 '왜 당신의 시계는 멈춰버렸을까', '반기문 총장처럼 되고 싶어요', '아내가 결혼했다', '부부? 살어말어', '한국형 가치투자전략'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때서야 작은 깨달음이 왔다.

그렇군, 유교랜드는 과거의 한국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현대 한국을 보여주는 곳이군.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 유교랜드는 한국이 실제의 한국, 실제의 한국 전체가 유교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동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라기보다는 현대 한국이 발명한 “유교”의 랜드.

유교랜드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야 하는 한국 관광산업의 현실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지방 자치체의 현황과 결국 도덕률로 환원되고 마는 정치적 비전과 젊은 세대에 대한 얄팍한 이해와 계층이동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조악하게 재발명되고 있는 전통의 모습과 이익을 논하고 있는 한국 투자자들의 마음과 거대한 투자처처럼 된 현대 한국의 모습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유교랜드는 과거 유교 문화의 테마파크가 아니라 현대한국을 구현한 테마파크이다.

고속버스로 어둠을 뚫고 상경하면서 다음 답사지를 머리에 떠올려보았다. 그것은 바로 청주시에서 187억을 들여 짓고 있는 태교랜드. 태교랜드의 “앞은 저수지, 뒤는 산지여서 아늑한 공간으로 산모와 영유아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라고 한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 때, 그곳에 가볼 일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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