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4번 타자 박병호(34ㆍ키움)는 올 시즌 좀처럼 웃을 일이 없다. 타자라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지만 박병호는 유독 기나긴 늪에 빠져있다. 종종 나오는 몰아치기로 반등 계기를 마련하는 듯 했지만 다시 침묵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시즌 타율은 5일 현재 0.232로 규정 타석을 채운 55명 가운데 54위다. 아무리 홈런 타자라고 해도 박병호가 이렇게 저조한 타율을 찍은 건 2012년 1군 풀타임을 뛴 이후 처음이다.
올해 타격 지표는 아쉬운 게 사실이지만 박병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팀 클럽하우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이자, 메이저리그 경험도 쌓은 그는 모든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ㆍ후배가 인정하는 성실함을 갖췄다. 또 자기 만의 확실한 루틴을 정립해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다. 자연스럽게 후배들은 박병호를 보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고, 훈련이나 루틴을 따라 하려고 했다.
그렇게 성장한 선수들은 박병호를 향한 ‘리스펙트(존중)를’ 가졌다. 2014년 데뷔 시즌부터 박병호와 한솥밥을 먹으며 어느덧 키움의 중심 타자로 성장한 김하성(25)은 “박병호 선배와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멘탈적으로 흔들릴 때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가 잘 안 될 때 내색을 안 하는 게 대단하다”며 “배울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박병호 대신 4번 타자 임무를 맡고 있는 이정후(22) 역시 프로 4년차임에도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박병호로 꼽았다. 그는 “좋은 선배가 있어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내야수 에디슨 러셀(26)도 ‘박병호 바라기’다. 러셀은 박병호를 소개할 때 한국 말로 ‘형님’이라고 표현했다. 훈련을 할 때나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볼 때 박병호 옆에 꼭 붙어 있는 러셀은 “루틴과 사소한 부분까지 얘기하면 답을 잘해준다”며 “리그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초보 사령탑인 손혁 감독은 팀의 기둥 같은 박병호가 든든하기만 하다. 그래서 박병호의 부진에 대해 취재진 질문이 매일 쏟아지는데도 말을 아낀 채 “박병호는 박병호”라고 굳건한 믿음을 나타냈다. 또 5번 타자로 기용할 때도 “박병호는 5번에 있는 실질적인 4번 타자”라고 간판을 예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