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슬픔 사이에 낀 베르테르는 ‘사랑’과 동의어다

입력
2020.08.06 18:50
17면
<31>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첫손에 꼽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 글을 씁니다.


사랑에 빠진 자의 불안정하고 어리석은 상태를 보는 일은 흥미롭다. 게다가 짝사랑이라면? 안타까움이 더해져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기 ‘로테’에게 마음을 빼앗긴 ‘베르테르’가 있다. 약혼자가 있는 로테에게 반해 막 사랑을 시작하는 베르테르는 호기롭기만 하다. 비록 반쪽짜리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시작점에서 샘솟는 황홀과 기대를 막을 순 없다.

“나는 신께서 성인(聖人)들에게 마련해 준 것 같은 행복한 세월을 보내고 있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기쁨을, 가장 순수한 기쁨을 맛보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네.” (42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하는 젊고 슬픈 베르테르여! 우리는 책을 읽기 전부터 그가 젊음과 슬픔 사이에 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젊음과 슬픔 사이에 낀 베르테르는 ‘사랑’과 동의어다. 제목을 ‘젊은 사랑의 슬픔’이라 바꿔 읽는다 해도 무리가 되진 않는다. 노년의 사랑과 좀 다르냐고? 물론 다르다. 젊어 겪는 사랑은 열병이고 정신착란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베르테르를 호명하며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사랑의 정념은 정신 착란이다.”( '사랑의 단상', 155쪽, 동문선)

사랑에 빠진 자는 괴로움으로 달아나려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늘 실패한다. “(사랑의) 상상계는 불이 잘 안 꺼진 이탄마냥 밑에서 타오르고 다시 불붙는다.”(바르트, 앞의 책, 158쪽) 사랑의 열정이 비등점에 도달하면 불치병으로 악화된다. 젊지 않은 사람은 치명상을 입을 사랑 앞에서 무모하게 몸을 던지진 않는다. 사랑 앞에서도 잃을 것을 따지고, 휘청이지 않게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있다. 누군가는 베르테르에게 진정하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조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베르테르는 이렇게 되묻는다.

“자네는 병세가 점점 깊어져서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을 보고 단도로 찔러서라도 그 고통을 단숨에 없애 버리라고 감히 권할 수 있는가? 환자의 기력을 소진시키는 질병은 그 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환자의 용기마저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지?” (66쪽)

사랑은 질병이다. 멈출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젊은이의 병, 슬픔의 병, 사랑의 병. 베르테르는 착각과 오해라는 시소를 타며 잠시 행복에 빠지지만, 로테의 차갑고 이성적인 말 한 마디에 시소에서 추락한다. 자신과는 달리 이성의 견고함을 보이는 알베르트(약혼자)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은 살게 하는 동시에 죽어 편해지라고 유혹하고, 행복이자 불행의 원천이 된다. “모순된 온갖 기운이 얽혀 있는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76쪽) 없다고 믿으며, 그는 죽음 쪽으로 더 다가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1년 5월부터 1772년 12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제 심경을 편지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괴테(1749~1832)의 나이는 스물다섯으로, 실제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한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편지에 담긴 베르테르의 격정과 고뇌, 괴로움에는 어느 정도 괴테의 심정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인간이 사랑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없을 걸세.”(77쪽)

오늘날 이렇게 단언하고 죽어 버린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스토커’라는 프레임 안에 두고 조금 꺼려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좀 무섭기도 하다!) 어찌 됐든 일방적인 사랑이며, 죽음을 부르짖으며 외치는 사랑에는 언제나 피의 맛이 배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토록 낭만적인 사랑은 희귀하여, 이제 박물관이나 책 속에 박제된 모습으로나 있으니 찾아볼 만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베르테르는 괴테만의 베르테르가 아닌, 우리 모두의 베르테르(사랑의 미치광이!)로 유명해졌지 않은가.

박연준 시인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