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어 선생님' 장익 주교 선종

입력
2020.08.06 09:38
19면
8일 죽림동성당 장례미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어 교사로 유명한 장익 주교가 5일 선종했다. 향년 87세.

6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오후 6시 9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3년 장면 전 총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미국 메리놀대, 벨기에 루뱅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1963년 사제품을 받았다. 1994년 주교품을 받고서 15년간 춘천교구장을 지냈다. 교황청 종교대평화의회 의원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도 지냈다. 2010년 교구장 은퇴 후에는 춘천 실레마을 공소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별세 소식을 접한 염수정 추기경은 고인을 두고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도 신자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시는 '양 냄새가 나는 목자'셨다"며 "모든 신앙인의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이 함흥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신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고인은 특히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사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교황은 한국에 도착한 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구절을 읊는 등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심지어 미사까지 한국어로 봉헌해, 크게 화제가 됐다. 여기엔 고인의 공이 컸다고 전해진다.

고인은 김수환 추기경과 인연이 깊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 비서 신부를 시작으로 김 추기경이 2009년 선종할 때까지 40년간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갔다. 김 추기경은 고인의 부친인 장 총리가 동성학교 교장이었던 시절 이 학교 학생이었다.

장 주교는 법정 스님과도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나눴다. 법정 스님과 30년지기인 고인은 천주교인으로서 이례적으로 1993년 법정 스님이 만든 '맑고 향기롭게'라는 무소유 운동에 동참한 바 있다.

빈소는 천주교 춘천교구 주교좌인 죽림동성당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8일 오전 10시 30분.

장재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