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임신테스트기 두줄을 보고 병원을 찾은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쿵~!' 하지 않을 여성은 드물 겁니다. 기쁨과 앞날에 대한 걱정이 교차하는 순간, "어제도 술 마셨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쳐갈 때 아찔하죠.
드문 일은 아닙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공간 맘 카페 등에도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는데 괜찮을까요"라는 글이 거의 매일 올라오거든요. 심지어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는데, 의사가 임신을 유지할 건지 말 건지 묻더라"는 사연도 있습니다. 이런 글에는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어요", "엄마가 임신 모르고 있었을 땐 아가들이 용서해준대요", "첫째, 둘째 다 임신인 줄 모르고 술 마셨는데 건강하게 출산했어요"라는 댓글이 달리곤 해요.
정말 아가들이 엄마가 모르고 마신 술은 못 본 척 넘어가 주는 건가요? 아직 세포인 그들이 용서를 해준다고요? 정말 괜찮은 거라면 임신 전 마신 술은 아예 영향이 없는 걸까요? 산부인과 교수에게 대신 물어봤습니다.
전승주 가천대 길병원 권역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 겸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 초기 알코올 섭취에 대해 "의사로서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치명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시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는데요. 그러니 맘카페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글이 올라오는 거겠지요. 전 교수도 "저도 둘째 임신을 모르고 전날 회식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공감했어요.
전 교수는 "가임기 직장인 여성이 매순간 임신을 가정하며 술자리를 피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월경이 규칙적이어도 임신임을 자각하기 어려운데 불규칙한 경우, 전문 의료진이 아닌 경우엔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마시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지나친 걱정은 우선 접어두고 몸 관리에 집중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임신 전 마신 술은 물론 임신인 줄 모르고 마신 술이나 임신 중 못 참고 한 모금, 한 잔 마신 술이 태아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안 줄 순 없습니다. 적어도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면 술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이유에요.
술을 마시면 태아도 같이 헤롱헤롱 취하게 되는 건 아닌데요. 문제는 태아에게는 다 큰 어른처럼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단 점이에요.
전 교수 설명에 따르면 알코올은 태반을 통과하고, 태반을 통과한 알코올은 태아의 몸으로 빠르게 퍼지는데요. 태반을 통과한 알코올은 양수에 머물고, 태아는 알코올이 있는 양수를 마시고, 이를 소변으로 배출한 뒤 다시 마시는 걸 반복하지요. 태아는 간과 콩팥(신장)이 완전하지 않아서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고요. 이렇게 알코올은 태아 몸에 점점 쌓이게 되는 겁니다.
에탄올이 태아 몸에 쌓여도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탄올은 대사 과정에서 태아 뇌 조직 세포막에 있는 다불포화지방산 곁사슬에 작용해 아기가 태어난 후 중추신경 기능 이상을 초래할 수 있고요. 태아 뇌 세포 손상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태아가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세포 분화 및 융합 과정에 영향을 미쳐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요. 태반 내에 혈관 수축을 가져와 태아에게 산소를 충분히 주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요. 산소가 부족하면 태아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어 성장 지연, 다시 말해 저체중아가 될 위험도 생길 수 있고요.
임신 초기, 임신임을 알기 전 술을 마셨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임신임을 안 후, '절대 금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태반이 완전히 생기기 전인 임신 초기 3개월 내 알코올 섭취는 유산율, 조산율, 저체중아 출산 가능성을 높인다고 해요.
전 교수는 "임신 초기가 지나도 알코올 섭취는 아이가 출생한 후 행동이나 인지 능력, 정신적·신체적 발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임신 기간 알코올은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임신 중 술은 정말 한 방울도 안 되는 걸까요? 요즘은 무알코올 맥주도 시중에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음식에도 화이트 와인 등 맛술을 넣는데요. 심지어 술 냄새도 맡으면 안 되는 걸까요? 이에 전 교수는 "그런 것마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의사로 당연히 권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어요. 임신 중인 여성과 태아를 치료하는 의료적 목적이 아닌 이상,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술을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출산 후에는 술을 마음대로 마셔도 될까요? 만약 모유 수유를 계획 중인 여성이라면 아닙니다. 수유를 완전히 마친 뒤로 음주 계획을 미뤄두는 것이 좋다고 해요. 이 역시 '굳이 위험한 길을 가야 할까'의 문제인데요.
전 교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있어서 약을 먹는 경우엔 약을 먹은 지 몇시간 뒤 모유를 비워낸 다음 수유하시라고 설명하는데 알코올은 별개의 얘기"라고 말했는데요. 예컨대 유방 울혈(분만·수유 중에 발생하는 유방 통증 및 발열 증상을 통칭. 젖몸살이라고도 하는데 오래 지속되는 경우 유선염이 생길 수도 있음)로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것과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건 차원이 다르다는 건데요. 전 교수는 "모유 수유를 선택했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립보건연구원 김원호 박사 연구팀이 '임신 전 알코올 섭취에 의한 태아발달 및 산모대사기능 이상' 연구에서 실험쥐 실험과 가임기 여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보면요. 임신 중 마신 술뿐만 아니라 임신 전 마신 술도 태아 발달 이상이나 기형아·거대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고 하는데요.
실험쥐에게 알코올이 든 식이를 임신 전 2주 동안 먹게 한 뒤 임신을 유도해 태아 발달부터 출산, 성장까지 모두 지켜본 결과, 임신 전 알코올을 섭취한 군의 임신 능력이 22%에 불과하고 태아 수는 11%였으며 태아발달 능력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또 임신 전 알코올을 섭취한 군은 태아 출생 직후 몸무게가 정상 군에 비해 1.87배 높았고 발가락 기형도 7%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음주는 임신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어요. 전 교수 설명에 따르면 음주하는 여성의 경우 배란 장애나 자궁내막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고 난포 성장도 방해해 배란이 잘 안되게 유도하거나 배아의 착상이나 성장도 방해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준비 단계에서부터 음주를 멈추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전 교수도 "난소 기능이 떨어져 수태 기능이 떨어지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술 자체를 '가임 기간 평생 신경쓰면서 사세요'라기엔 어렵다"고 말했어요.
임신 준비 중 금주 혹은 절주, 남성도 필요합니다. 임신을 준비하거나 난임을 우려하는 '요즘 남성들'은 담배는 물론 술 마시는 양을 조절하고 미리 엽산(비타민 B군에 속하는 수용성 비타민. 태아의 뇌 발달을 도와 신경관 결손을 막고 습관성 유산·다운증후군·저체중아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임신 준비 필수 영양제로도 불림)도 챙겨 먹는다고 해요.
결혼 2년 차가 된 올해 임신을 준비 중인 여성 임모(31)씨는 "지난달부터 남편과 함께 술을 줄이고 엽산을 먹으며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담배를 아예 끊으며 건강 관리를 하더라"고 말했어요. 지난 7월 결혼을 한 직장인 여성 최모(31)씨도 "가족 계획에 앞서 엽산을 사놓는 등 슬슬 준비하고 있다"며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에 돌입하는 시기에는 남편도 함께 절주할 계획"이라고 말했고요.
실제로 알코올 섭취는 정액의 양, 정자의 농도 및 운동성 기형에도 영향을 미친답니다. 전 교수는 "시험관 시술 등 난임 시술을 받으려는 경우, 남성도 금주와 금연이 필수"라고 하는데요. 전 교수는 "난임의 원인은 여성에게 반, 남성에게 반 있듯이 남성의 음주도 충분히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요즘은 남성분들도 술담배를 줄이거나 끊는 등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