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마셨는데" 임신 초기 마신 술, 정말 괜찮나요?

입력
2020.08.09 10:00
모체 알코올이 태아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는
임신을 알기 전, 모르고 마신 술은 아기가 봐준다?
"임신을 알게 된 후엔 한 모금, 한 잔도 안 돼요"

편집자주

임신을 하게 되면 궁금해지는 것들이 시시때때 생기는데요. 이중에는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기 민망할 정도로 사소하지만, 책에도 나오지 않아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습니다.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맘카페에서 답을 구하면서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죠. 그런 궁금증을 모아 출산을 앞둔 이정은 기자가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임신테스트기 두줄을 보고 병원을 찾은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쿵~!' 하지 않을 여성은 드물 겁니다. 기쁨과 앞날에 대한 걱정이 교차하는 순간, "어제도 술 마셨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쳐갈 때 아찔하죠.

드문 일은 아닙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공간 맘 카페 등에도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는데 괜찮을까요"라는 글이 거의 매일 올라오거든요. 심지어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셨는데, 의사가 임신을 유지할 건지 말 건지 묻더라"는 사연도 있습니다. 이런 글에는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어요", "엄마가 임신 모르고 있었을 땐 아가들이 용서해준대요", "첫째, 둘째 다 임신인 줄 모르고 술 마셨는데 건강하게 출산했어요"라는 댓글이 달리곤 해요.


정말 아가들이 엄마가 모르고 마신 술은 못 본 척 넘어가 주는 건가요? 아직 세포인 그들이 용서를 해준다고요? 정말 괜찮은 거라면 임신 전 마신 술은 아예 영향이 없는 걸까요? 산부인과 교수에게 대신 물어봤습니다.

임신 초기 모르고 마신 술, 얼마나 위험한가요?


임신 초기 마신 술이 아주 치명적으로 위험하진 않아도, 중요한 건 임신임을 안 이후에 마시지 않는 것이다
전승주 가천대 길병원 권역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 겸 산부인과 교수

전승주 가천대 길병원 권역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 겸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 초기 알코올 섭취에 대해 "의사로서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치명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임신인 줄 모르고 술을 마시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는데요. 그러니 맘카페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글이 올라오는 거겠지요. 전 교수도 "저도 둘째 임신을 모르고 전날 회식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공감했어요.

전 교수는 "가임기 직장인 여성이 매순간 임신을 가정하며 술자리를 피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월경이 규칙적이어도 임신임을 자각하기 어려운데 불규칙한 경우, 전문 의료진이 아닌 경우엔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마시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지나친 걱정은 우선 접어두고 몸 관리에 집중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임신 중 마신 술이 태아에 영향을 주는 과학적 원리

임신 전 마신 술은 물론 임신인 줄 모르고 마신 술이나 임신 중 못 참고 한 모금, 한 잔 마신 술이 태아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안 줄 순 없습니다. 적어도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면 술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이유에요.

술을 마시면 태아도 같이 헤롱헤롱 취하게 되는 건 아닌데요. 문제는 태아에게는 다 큰 어른처럼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단 점이에요.

전 교수 설명에 따르면 알코올은 태반을 통과하고, 태반을 통과한 알코올은 태아의 몸으로 빠르게 퍼지는데요. 태반을 통과한 알코올은 양수에 머물고, 태아는 알코올이 있는 양수를 마시고, 이를 소변으로 배출한 뒤 다시 마시는 걸 반복하지요. 태아는 간과 콩팥(신장)이 완전하지 않아서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고요. 이렇게 알코올은 태아 몸에 점점 쌓이게 되는 겁니다.

에탄올이 태아 몸에 쌓여도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탄올은 대사 과정에서 태아 뇌 조직 세포막에 있는 다불포화지방산 곁사슬에 작용해 아기가 태어난 후 중추신경 기능 이상을 초래할 수 있고요. 태아 뇌 세포 손상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태아가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세포 분화 및 융합 과정에 영향을 미쳐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요. 태반 내에 혈관 수축을 가져와 태아에게 산소를 충분히 주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요. 산소가 부족하면 태아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어 성장 지연, 다시 말해 저체중아가 될 위험도 생길 수 있고요.

임신 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요

임신 초기, 임신임을 알기 전 술을 마셨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임신임을 안 후, '절대 금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태반이 완전히 생기기 전인 임신 초기 3개월 내 알코올 섭취는 유산율, 조산율, 저체중아 출산 가능성을 높인다고 해요.

전 교수는 "임신 초기가 지나도 알코올 섭취는 아이가 출생한 후 행동이나 인지 능력, 정신적·신체적 발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임신 기간 알코올은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임신 중 술은 정말 한 방울도 안 되는 걸까요? 요즘은 무알코올 맥주도 시중에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음식에도 화이트 와인 등 맛술을 넣는데요. 심지어 술 냄새도 맡으면 안 되는 걸까요? 이에 전 교수는 "그런 것마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의사로 당연히 권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어요. 임신 중인 여성과 태아를 치료하는 의료적 목적이 아닌 이상,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술을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출산 후에는 술을 마음대로 마셔도 될까요? 만약 모유 수유를 계획 중인 여성이라면 아닙니다. 수유를 완전히 마친 뒤로 음주 계획을 미뤄두는 것이 좋다고 해요. 이 역시 '굳이 위험한 길을 가야 할까'의 문제인데요.

전 교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있어서 약을 먹는 경우엔 약을 먹은 지 몇시간 뒤 모유를 비워낸 다음 수유하시라고 설명하는데 알코올은 별개의 얘기"라고 말했는데요. 예컨대 유방 울혈(분만·수유 중에 발생하는 유방 통증 및 발열 증상을 통칭. 젖몸살이라고도 하는데 오래 지속되는 경우 유선염이 생길 수도 있음)로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것과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건 차원이 다르다는 건데요. 전 교수는 "모유 수유를 선택했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신을 준비한다면 예비 아빠도 술을 줄여요!


국립보건연구원 김원호 박사 연구팀이 '임신 전 알코올 섭취에 의한 태아발달 및 산모대사기능 이상' 연구에서 실험쥐 실험과 가임기 여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보면요. 임신 중 마신 술뿐만 아니라 임신 전 마신 술도 태아 발달 이상이나 기형아·거대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고 하는데요.

실험쥐에게 알코올이 든 식이를 임신 전 2주 동안 먹게 한 뒤 임신을 유도해 태아 발달부터 출산, 성장까지 모두 지켜본 결과, 임신 전 알코올을 섭취한 군의 임신 능력이 22%에 불과하고 태아 수는 11%였으며 태아발달 능력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또 임신 전 알코올을 섭취한 군은 태아 출생 직후 몸무게가 정상 군에 비해 1.87배 높았고 발가락 기형도 7%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음주는 임신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어요. 전 교수 설명에 따르면 음주하는 여성의 경우 배란 장애나 자궁내막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고 난포 성장도 방해해 배란이 잘 안되게 유도하거나 배아의 착상이나 성장도 방해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준비 단계에서부터 음주를 멈추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전 교수도 "난소 기능이 떨어져 수태 기능이 떨어지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술 자체를 '가임 기간 평생 신경쓰면서 사세요'라기엔 어렵다"고 말했어요.

임신 준비 중 금주 혹은 절주, 남성도 필요합니다. 임신을 준비하거나 난임을 우려하는 '요즘 남성들'은 담배는 물론 술 마시는 양을 조절하고 미리 엽산(비타민 B군에 속하는 수용성 비타민. 태아의 뇌 발달을 도와 신경관 결손을 막고 습관성 유산·다운증후군·저체중아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임신 준비 필수 영양제로도 불림)도 챙겨 먹는다고 해요.

결혼 2년 차가 된 올해 임신을 준비 중인 여성 임모(31)씨는 "지난달부터 남편과 함께 술을 줄이고 엽산을 먹으며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담배를 아예 끊으며 건강 관리를 하더라"고 말했어요. 지난 7월 결혼을 한 직장인 여성 최모(31)씨도 "가족 계획에 앞서 엽산을 사놓는 등 슬슬 준비하고 있다"며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에 돌입하는 시기에는 남편도 함께 절주할 계획"이라고 말했고요.

실제로 알코올 섭취는 정액의 양, 정자의 농도 및 운동성 기형에도 영향을 미친답니다. 전 교수는 "시험관 시술 등 난임 시술을 받으려는 경우, 남성도 금주와 금연이 필수"라고 하는데요. 전 교수는 "난임의 원인은 여성에게 반, 남성에게 반 있듯이 남성의 음주도 충분히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요즘은 남성분들도 술담배를 줄이거나 끊는 등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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