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폭염(2018년), 겨울철 이상 고온(2019년), 최장 기간 장마(2020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반도는 유독 이에 취약한 모습이다.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대륙의 가장 동쪽에 위치, 대륙과 바다에 끼어 있어 여름에는 해양성 기후, 겨울에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등 기후 변화의 폭이 큰 탓이다. 더불어 최근 온난화가 심해지는 시베리아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점도 한치 앞을 살필 수 없는 '기후 불확실성의 시대' 를 앞당기는 모양새다.
김성중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극지기후과학연구부장은 "여름에는 북태평양고기압, 겨울에는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원래도 기후 변화에 민감한 지역"이라며 "이와중에 지구 온난화로 한국에 수분과 열을 공급해주는 쿠로시오 난류가 북상하면서 기후 변동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의 이상 기온 현상은 2018년 이후 두드러진다. 2018년 8월 1일, 서울은 39.6도를 찍었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111년만에 가장 더운 날이었다. 같은 날, 강원도 홍천은 41.0도까지 치솟으며 1942년 대구의 40.0도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9년 여름에는 폭염 대신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다나스, 프란시스코, 레끼마, 크로사, 링링, 타파, 미탁 총 7개의 태풍이 한반도 상공을 거쳐갔다. 평년(3.1개) 보다 2배 많은 태풍이었다. 지난 겨울 전국 평균기온은 3.1도로 평년보다 2.5도 높았다. 따뜻한 겨울 날씨로 인해 올해 여름에는 전국 각지에서 '벌레의 대발생'이 일어났다. 최고 기온도 8.3도로 평년보다 2.2도나 높아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겨울 기온과 가장 적은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폭염, 겨울철 이상 고온은 물론 빈번한 태풍까지 모두 지구 온난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여름 태풍의 잦은 발생은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29도)로 인해 상승 기류가 강해지며 북태평양고기압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게 기상청의 분석이다.
이번 최장 장마 역시 전지구적인 이상 기후 현상의 결과물이다. 북극이 예년보다 따뜻해진 영향으로 한반도 주변 대기 흐름이 변하면서, 장마전선이 빈번하게 활성화됐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본래 기상청은 올해 여름철 기상 전망을 하며 2018년과 같은 역대급 폭염을 예고했다. 하지만 중부지방의 장마가 8월 10일을 넘길 것으로 예측되는 등 예상보다 10일 이상 길어지면서 오히려 7월 평균기온은 22.5도로 평년보다 2도나 낮은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기상청이 서울과 경기, 강원에 4, 5일 최대 500㎜의 비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한 가운데, 서울에는 4일 밤과 5일 새벽 사이 최저기온이 25도가 넘는 첫 열대야가 찾아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졌다. 통상 장마가 끝나고 폭염과 함께 열대야가 오는 게 일반적이지만, 장마가 길어지면서 장마와 열대야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난데 없는 밤더위가 찾아온 대신 수도권을 향한다던 '물폭탄'은 북한으로 옮겨갔다.
장마전선의 변동성이 커진 만큼 당초 이달 중순으로 예보된 중부지역 장마 종료시점도 더 늦어질 개연성이 커졌다. 자칫 이달 말부터 이어질 2~3개 태풍의 내습이 늦장마와 시기적으로 맞닿을 경우, 강우의 위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앞으로도 한반도 기후의 규칙성이 깨지는 등 장기적인 기후 관측이 더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용수철이 아예 변형되면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듯이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기후이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대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슈퍼태풍, 폭염, 홍수가 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제4호 태풍 '하구핏'이 이날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소멸해 저기압으로 바뀌었지만 한반도로 수증기를 몰고와 6일 새벽부터 오후 사이 전국 대부분 지역에 뇌우를 동반한 시간당 30~50㎜의 강한 비가 쏟아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