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켜 보니, 저러다 자멸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부동산법 ㆍ공수처법 ‘입법 독주’에 대한 소회를 이 같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여야 협의ㆍ합의를 골간으로 하는 '국회법 정신'을 저버린 슈퍼 여당을 향한 분노가 깊은 듯했다. 주 원내대표의 취임 100일(15일)을 앞두고 진행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 수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동안, 통합당이 제1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다. '통합당도 무기력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주 원내대표는 그러나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해야 무기력하지 않은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176석 대 103석'이라는 힘의 불균형에 무너지느니 차라리 국회 밖으로 나가 싸우자'는 강경론이 통합당엔 여전히 있다. 주 원내대표는 “내 원칙은 국회법 틀 안에서 논리와 치열함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인터뷰는 3일과 5일 진행했다.
-21대 국회의 첫 임시국회가 통합당 입장에선 허탈하게 끝났는데.
“민주당은 저러다 자멸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민주당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부동산 시장 가격을 법을 관여시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발상이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1989년 정부가 주택임대차계약 보장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급하게 늘렸을 때 전세가격 폭등한 게 한 예다. 이번에도 정부가 보장한 4년의 임대 기간이 지나면 전월세가가 또 급등할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1가구 1주택 외에는 무조건 팔라고 강요하는 건데, 결국 양질의 주택이 공급이 막힐 것이다. 우리가 공급 확대 정책을 강조한 이유다. 재개발 용적률 완화, 고밀도 개발, 고층 아파트 허용 등으로 10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게 우리 당 대책의 핵심이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예상 못한 건가.
“예상은 했지만 국회법 안에서 최소한 규정과 관례는 지킬 줄 알았다. 상임위별 소위원회 구성이나 법안 대체토론 등 절차를 건너 뛰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할 줄은 몰랐다. 원 구성 협상 때 민주당은 ‘우리는 176석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야당과 협의하거나 야당을 배려할 필요 없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결국 그 말이 현실이 됐다.”
-통합당 역시 너무 무기력했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해야 무기력하지 않은 것인지 묻고 싶다. 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황에서 무기력하지 않으려면 의사진행을 물리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건 국회법 위반이다. 장외 투쟁을 하자, 국회의원 총사퇴 카드를 쓰자 같은 의견에 당내에 있다. 그러나 원내를 포기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장외 투쟁을 하더라도 원내에서 할 일은 철저히 하면서 해야 한다. 국회법 틀 안에서 논리와 치열함으로 싸워야 한다. 윤희숙 의원처럼 민주당 법안의 핵심을 꿰뚫어 비판하고 대안을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무엇보다 장외 투쟁은 국민의 공분이 임계점에 도달할 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할 순 없다. ”
-통합당의 존재감을 어떻게 회복할 건가.
"국민이 우리에게 부여해 준 임무를 꾸준히 하다 보면 곧 인정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민심이 민주당에서 떠나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통합당으로 전부 오지는 않고 있다. 우리가 잘 하면 앞으로 더 많이 올 것이다. 예를 들어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초선 의원과 보좌진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원구성 협상 결렬로 민주당에 전부 내준 국회 상임위원장 중 통합당 몫을 돌려 받을 생각은 없나.
"‘우리가 국토교통위원장을 맡았다면, 최소한 관련 법안을 안건 조정위원회에 회부해 90일 숙려 기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당내에 있는 건 사실이다. 민주당에도 상임위원장을 반환하자는 얘기가 있지만 지금 이대로는 받지 않겠다. 민주당이 원구성ㆍ입법 독주를 사과하고 진정한 의미의 협치를 구체적으로 약속한다면 생각해 보겠다."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갑자기 띄웠는데.
"수도권 집값 상승으로부터 민심을 돌리기 위한 정략이라고 본다. 국토 균형발전은 필요하지만,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게 국토 균형발전의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행정수도 빨대 효과로 세종시조차 수도권화 될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통일을 감안해도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청와대 등 주요 기관을 옮기는 데만 20조 이상이 든다고 한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인기영합적으로 하는 게 과연 옳은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큰 당위가 있는데, 끝까지 반대할 수 있나.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국회 행정수도 특위를 제안했는데, 무시하는 게 맞는지 논의의 장에 들어가 우리 의견을 내는 게 좋은지를 고심하고 있다."
-부동산 입법을 마무리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압박한다.
"공수처의 필요성 자체가 없어졌다. 검찰의 힘을 이미 다 빼놓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과 친인척을 감시하기 위해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금 그 논리를 대는 민주당 의원은 없다. 문 대통령 퇴임 이후 본인과 가족, 측근들 처벌 받는 게 두려워서 검찰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게 공수처의 목적이다. 헌법재판소의 공수처법 위헌 여부 결정을 일단 기다리겠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협치가 실종된 데 대한 항의 차원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할 생각은.
"검토는 하겠지만, 아무 의미는 없다. 말 다르고 행동이 다른 모습이 한번이었으면 모를까, 이미 여러 차례 봤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행동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지난 5월 문 대통령에게 여야 협치를 위한 정무 장관 신설을 요구했는데.
"제가 공식 건의한 게 아닌데, 청와대에서 이슈를 키웠다. 전해 듣기로, 문 대통령은 국회와 소통을 위한 정무장관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한다. 정부 내에 특별한 임무를 맡는 차원의 특임장관 신설만 고민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통합당의 보수색을 벗기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소위 보수색이라는 건 '보수의 가치'라기 보단 '과거 보수 정당이 내세운 주장'에 가깝다.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보수의 개념을 바꿀 때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가 됐다. 시대 변화에 따르는 게 곧 보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보수 정책이냐, 진보 정책이냐, 구분하는 건 뒤처지는 것이다. 예컨대 기본소득제도 우리 공동체의 지속에 도움이 된다면 채택 할 수 있다."
-지난 3개월을 자평한다면.
"민주당이 국회법과 국회 운영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탓에 한계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민주당이 국회 관례를 지켰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우리 주장과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협상력과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석 달이었다."
-어떤 원내대표로 기억되고 싶나.
"장기적으로는 능력 있고, 사심 없고, 당의 기반을 다시 다진 원내대표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 당장은 소속 의원 103명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단결력을 키운 원내대표이자 통합당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