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42채 '싹쓸이' 中유학생은 8채 사서 임대... 만만했던 한국 부동산

입력
2020.08.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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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다주택 외국인 탈세혐의자 42명 세무조사
2017년 이후 외국인 구입 아파트 2만3000채 달해

#. 미국 국적의 40대 A씨는 2018년부터 수도권과 충청권의 소형 아파트 42채(약 67억원 상당)를 갭투자 방식으로 ‘싹쓸이’ 했다. 국세청의 검증 결과, 그는 수십 채 아파트를 살 만큼 국내 소득이 많지 않고, 그만큼의 재산도 없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자금을 융통한 기록도 없었다.

A씨는 보유 아파트 중 일부에 주택임대업 등록도 하지 않아 임대소득을 과소 신고한 혐의도 받는다. 국세청은 A씨의 부동산 취득 과정과 임대소득을 정밀 검증하는 한편, 미국 과세당국에 관련 자료를 통보하기로 했다.

국내 주택시장 과열을 틈탄 외국인의 수도권 아파트 ‘원정 매수’가 사실로 드러났다. 외국인들은 2017년 이후 2만채 넘는 아파트를 사들이며 7조7,000억원을 썼다. 국세청은 이들 중 투기성 수요가 상당히 많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고 주택임대소득 등의 탈루 혐의가 있는 외국인 다주택 보유자 등 42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3일 밝혔다.

외국인, 3년여간 국내 아파트 7조원 넘게 샀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들이 사들이는 투기성이 의심되는 국내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들인 아파트는 2만3,167채(거래금액 7조6,726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의 아파트 구매는 2017년 5,308건에서 △2018년 6,974건 △2019년 7,371건 등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이 기간 외국인이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아파트 매입에 쓴 돈(6조6,462억원)이 전체의 86.6%다. 서울에서만 4,473채(3조2,725억원 어치)를 사들였는데, 이 중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소재 아파트만 1,152채(1조3,476억원)에 달한다.

전체의 32.7%인 7,569채는 외국인이 집을 산 뒤 한차례도 거주한 적이 없었다. 두 채 이상 다주택 외국인 1,036명은 2,467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42채로 최다 보유자에 오른 A씨는 흔히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불리는 한국계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생이 집 8채 사서 임대사업

30대 중국인 B씨는 국내에 유학 목적으로 입국해 어학과정을 마친 뒤 취업했다. 그는 서울의 고가 아파트를 비롯해 △경기 △인천 △부산 등 전국을 돌며 아파트 8채를 샀고, 이 중 7채를 전ㆍ월세로 임대했다.

B씨는 임대수입을 신고하지 않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B씨가 중국에서 수 억원의 자금을 들여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아파트를 사는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외국 법인의 국내 사무소 임원 50대 C씨는 시가 45억원 상당의 한강변 고가 아파트, 30억원 상당 강남 아파트 등 아파트 4채(120억원 상당)를 취득했다. C씨는 외국인 주재원에게 3채를 임대하면서 월 1,000만원 이상 고액 월세를 받고도 주택임대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외국인은 월세를 내도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라 별도로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국세청은 임대소득 신고를 누락한 C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임대소득세 가산세도 부과할 예정이다.


“탈세 외국인, 해당 국가 국세청에 통보”

국내에 살지 않는 외국인이라고 할지라도 주택을 살 때는 취득ㆍ등록세를 납부하고, 주택임대소득세와 양도소득세도 국내에 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대상 42명은 임대소득을 숨긴 것은 물론, 주택 취득 자금 출처조차 불분명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뒤 투기 목적 외국인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에 관련 내용을 ‘정보교환’ 형태로 통보할 계획이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실거주 이외 목적으로 외국 부동산을 취득ㆍ보유하는 경우, 거주지국 과세당국의 관리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부동산을 이용한 소득은닉, 신고의무 위반 등 역외탈세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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