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자산 매각 日 2차 보복 예고에… 정부 "플랜B 준비 마쳤다"

입력
2020.08.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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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ㆍ외교부 등 1월부터 대책 고심해 1차 대안 마련  
'1+1안' 플러스 알파 제안도 일 측 거부해 악화 
서훈ㆍ박지원 등 물밑 협상 재개 가능성에 촉각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행 관련 일본의 2차 보복에 대비해 정부가 '플랜B(대안)'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한 '끝장' 전략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법원의 일본 기업 자산 매각 명령 이행 절차가 오는 4일부터 본격화하면 한일관계가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2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청와대와 외교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기획재정부 등은 지난 1월부터 전범기업 자산 매각 진행 시 일본 측의 2차 보복 시나리오에 대비한 공동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일본 측의 추가 보복 조치로 예상되는 △비자 제한 △관세 인상 △수출규제 조치 강화 △일본 내 한국기업 자산 압류 △국내 기업에 대한 금융제재 등 각 사안별 대처법을 최근까지 검토해왔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절차 전에 한일 양국이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지만 쉽지 않다고 정부도 판단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안을 1차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를 입힌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할 수 있게 한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후속 법적 절차는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법원은 4일 0시부터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합작해 만든 법인 PNR의 주식 압류와 매각(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일본제철이 11일 0시까지 항고하지 않으면 압류 명령은 확정된다. 다만 법원이 압류 자산 처분 매각 명령을 내리더라도 현금화 절차 마무리까지는 4~5개월 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기업 자산 매각 절차보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빠르게 이뤄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의 자산 처분 방지에 대응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1일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일본의 2차 보복 현실화 시 정부는 즉각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일본의 1차 수출규제 조치로 한일갈등이 불거졌을 때처럼 비자 제한이나 관세 인상 등의 문제는 상호주의 원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국내기업에 대한 금융제재도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은행이 국내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420억달러(약 50조원)로 추산되는데, 일본 측이 보증을 급작스레 철회하면 국내기업의 달러 조달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소식통은 "국내 외환보유액(6월말 기준 4,100억달러)을 감안하면 정부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가 연장될 가능성에 대비해선 관련 부처에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대책을 마련 중이다. 불화수소는 일본 수입 비중을 42.4%에서 9.5%로 줄여 국산화를 이뤘지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여전히 일본 수입 비중이 92.9%에 달해 소재 수입처 다변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본과의 '강 대 강' 대치를 염두에 둔 것은 각종 외교 노력이 통하지 않아서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을 전후해 일본 측에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도 실질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열어두겠다'고 재차 제안을 했지만 일본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안'(일본의 전범기업과 청구권 자금의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새 기금을 만드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일본기업의 배상시 동일 금액을 한국 정부가 기금으로 보전하는 방안 등도 거론됐으나 합의는 없었다. 이후 관련 의제에 대한 한일간 논의는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한일관계 경색 우려는 여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외교안보라인이 주축이 돼 한일 물밑교섭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외교가에서 나온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북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일본 측과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일본 집권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과 막역한 사이여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물밑 협상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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