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강행 지난 정권보다 많다… 형식만 남은 문 정부 인사 청문회

입력
2020.08.03 11:00
"청문 제도 개선" 확산


국회 인사청문회를 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청문회의 마침표 격인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될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던 20대 국회 때 모습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빠진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야당을 중심으로 고위공직자 후보의 자질을 따져보고 임명의 정당성을 높인다는 인사청문회 취지 자체를 "거대 여당이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일까지 21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친 고위 공직자 후보는 4명이다. 그 중 절반인 2명이 여당의 ‘반쪽 보고서 채택’ 이후 임명됐다. 민주당은 지난 달 24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채택한 데 이어, 같은 달 28일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보고서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미래통합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면 합의서 진위여부가 밝혀질 때까지 임명을 유보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보고서 채택 3시간여 만에 임명안을 재가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야당과 접점을 찾을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고서' 없는 임명 23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보다 많아


인사청문보고서 패싱에 야당 패싱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뉴 노멀’(새 표준)’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요청안은 74건이다. 이중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경우는 23건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10건)나, 이명박 정부(17건)보다 많다. 인사청문회가 ‘국회의 권력통제’보다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불발 시 대통령이 국회에 재송부를 요청하는 ‘마감기한’도 짧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기한을 이틀로 못 박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장관을 지낸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불발 당시, 문 대통령은 국회에 재송부 기한을 7일로 통보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이 정한 재송부 기한은 최대 10일인데 이 기한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야당은 추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기한을 이틀로 정한 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다시 한번 인증했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여당시절 "청문제도 바꾸자"


수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민주당이 국회 인사청문회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개청문회는 정견과 정책적 능력 검증에 초점을 맞추고,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백악관 인사처와 공직자윤리위, 연방수사국에서 담당하는 미국식 모델을 대안으로 꼽는다.

여야 모두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크지 않다. 실제 민주당의 정성호 홍영표 의원 등은 지난달 미국식 모델을 골자로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 시절인 2014년 당시 김영우 의원이 청문회에서 사생활에 관한 사항은 비공개로 진행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냈다. 새누리당은 같은 해 "사생활을 파헤치는 현 인사청문회 제도 운영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인사청문제도 개혁 태스크포스까지 꾸렸다.

문제는 주요 정당들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의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시적 미봉책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룰과 관련된 문제는 누가 다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도를 고쳐야 한다"며 "다음 정부부터 적용할 인사청문제도 개혁을 여야간 합의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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