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키스' 아니라 '스테이플러' 얼마나 아시나요

입력
2020.08.05 09:30


평소엔 무심코 쓰지만, 막상 제 때 손에 잡히지 않으면 아쉬운 것. 스테이플러(staplerㆍ철사침으로 서류를 철하는 도구)란 그런 것 중 하나다. 그래서 이런 전시가 더 흥미로운 지도 모르겠다. 서울 서교동 복합문화공간인 ‘오브젝트’에서 열리는 ‘스테플러 학과’전. 당연하게도 국내 첫 스테이플러 전시다.

전시는 스테이플러의 모든 것을 조명한다. 침 넣어 손으로 꾹 눌러 찍으면 그만인 도구를 두고 '모든 것'이라 부를 만한 게 있을까 싶지만, 스테이플러가 만들어지는 영상에서부터 시작하는 전시는 의외로 요모조모 볼거리가 많다. 스테이플러의 역사, 부품, 도면, 디자인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전시는 스테이플러 역사부터 훑는다. 아직도 스테이플러 대신 '호치키스'란 이름이 더 입에 잘 붙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처음 수입했던 스테이플러 제조사 이름이 호치키스여서다. 1961년 한국의 '피스코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테이플러 침 '평화 33호', 스테이플러 '평화 35호' 등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현대 작가 4명의 스테이플러 재해석이다. 김승연, 다이노탱, 웜그레이테일, 이나 피스퀘어 등 4명(팀)의 작가들의 작품인데, 이들은 스테이플러의 특징으로 ‘연결’이란 키워드를 뽑아낸 뒤 여기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한 스테이플러를 선보인다.

키워드를 바탕으로 작가들은 각각의 캐비넷을 꾸미기도 했다. 예컨대 이나 피스퀘어의 캐비넷엔 ‘우리(WE)’, ‘사랑(LOVE)’, ‘평화(PEACE)’ 같은 단어가 새겨진 문구와 스티커, 소품들이 가득하다. 김승연 작가는 연결을 우주로 해석했다. 우주 연구에 매진한 캐릭터 ‘유창덕 군’의 캐비닛에다 행성모형, 측정도구, 계량기 등을 넣어두는 방식이다.



각각의 부품이 조립되는 간이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해 관객들이 제작 공정을 체험할 수도 있다. 김효정 전시기획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오랜 세월 집적된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지금 세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대학 형태로 전시를 꾸몄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이 좋아하는 굿즈(goodsㆍ기획상품) 형태의 스테이플러, 티셔츠, 에코백, 볼펜, 스티커 등도 함께 진열돼 있다.

반응은 좋다. 하루 평균 관람객이 500여명. 관람객 민지우(24)씨는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스테이플러를 다시 보게 됐다”며 “일상의 사물에도 의미와 취향을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심수인(21)씨도 “스테이플러도 재미를 주는 나만의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오브젝트’는 스테이플러 이후에도 일상의 사물을 재조명하는 ‘사물’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스테이플러 학과전은 23일까지.


강지원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