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유망주 깨운 상동의 ML식 비전 트레이닝

입력
2020.08.01 07:30
19면
비전 테스트 우등생 김민수 배성근, 2군에서 맹타

프로야구에서 야수를 평가할 때 흔히 쓰는 ‘파이브툴(Five-Tool)’은 타격의 정확성, 파워, 수비, 송구, 주루를 일컫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메이저리그에서는 평가 항목 하나가 늘었다. 바로 투구 인식 능력이다. 야구계에 널리 알려진 동체시력이 단순히 빠른 공을 보는 거라면, 투구 인식은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별하고 더 나아가 구종과 궤적까지 파악하는 걸 지칭한다.

탁월한 투구 인식 능력으로 빛을 본 대표적인 선수는 ‘4,000억원 사나이’ 무키 베츠(LA 다저스)다. 키가 175㎝에 불과한 베츠는 2011 드래프트 당시 작은 체구 탓에 하위권 지명 후보였지만 보스턴이 투구 인식 능력을 보고 5라운드에 지명했다.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동료로도 유명했던 포수 마이크 피아자는 대학을 졸업할 때 어느 팀으로부터도 지명 받지 못하고 아버지 친구인 토미 라소다 다저스 감독의 추천으로 다저스 유니폼을 입기는 했지만 당시 비전 트레이닝 박사로부터 다저스 선수 중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올해 스포츠 사이언스팀을 신설해 선진 훈련 기법을 도입한 롯데는 국내 구단 최초로 메이저리그식 비전 트레이닝을 2군 훈련장인 김해 상동구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팀에서 트레이닝 코치를 지낸 허재혁 스포츠 사이언스팀장은 “현재 시범적으로 하고 있지만 하반기 목표는 비전 트레이닝을 완전히 정착시키는 것”이라며 “훈련의 일부분으로 ‘경기 전에 꼭 해야 한다’는 의식을 선수들이 가질 수 있도록 자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전 트레이닝 장비는 비전 안경(셔터 글라스), 비전 스틱, 스파이크 볼 등이 있다. 빛으로 시야를 차단하는 비전 안경을 착용한 상태로 날아오는 공을 잡거나, 세 가지 색으로 그려진 비전 스틱을 공중에서 떨어질 때 특정 색 방향으로 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파이크 볼은 팀을 이뤄 작은 그물 안에 공을 치는 방식이다.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훈련은 스파이크 볼이다. 롯데 신인 김현종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동작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첩성과 상황 판단능력, 협응력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롯데에서 비전 트레이닝 우등생은 내야수 정훈, 김민수, 배성근이 꼽힌다. 허 팀장은 “김민수는 스프링캠프에서 테스트할 때 시각 기능이 떨어진다는 처방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지표에서 상위권에 있다”고 했다. 우등생은 곧 실력으로 입증됐다. 2군에서 김민수는 타율 0.349 8홈런 40타점, 배성근은 타율 0.326 3홈런 23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8월15일 엔트리 확대 때 1군 진입이 유력하다.


롯데는 단순하고 재미 있는 비전 트레이닝 외에도 전자장비를 활용해 한 단계 더 나아간 신경 트레이닝법도 도입할 예정이다. 김용진 트레이닝 코치는 “운동 능력과 밀접한 감각 신경 중 4개는 눈과 관련됐다”며 “주변 시각이 넓어지면 뇌에 정보가 많아져 운동 능력도 상승된다”고 설명했다.

김해 김지섭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