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도 8년 만에 인정" 전국 노조 꿈꾸는 배달노동자들

입력
2020.07.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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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고용부에 노조 설립 신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조 설립 이어질 듯
노동조합법 개정 없인, 교섭권 등은 '요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 배달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했다. 최근 고용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인 대리운전기사 노조를 합법 노조로 인정하자, 배달 노동자들 역시 ‘전국단위 노조’ 설립에 나선 것이다. 최근 특고의 근로자성을 규정하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이들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폭은 넓어졌지만, 정작 노동조합법은 여전히 전속 근로자 위주의 규정뿐이어서 특고 노조의 문이 열려도 실제 단결권 행사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배달 노동자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30일 오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고용부는 라이더와 비슷하게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대리운전노조에 17일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교부했다”며 “고용부의 결정이 전체 플랫폼노동자로 확대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신고서를 제출한다”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미 합법 노조이긴 하다. 작년 11월 서울시는 이들의 노조 설립을 승인했다. 하지만 서울시에 노조설립 허가 신청은 라이더들이 택한 일종의 우회로였다. 박 위원장은 “정부가 지난해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관련 노동조합법 개정안에서 특고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담은 내용은 제외했다”며 “고용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면 반려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불가피하게 서울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회로 덕분에 라이더들이 노조를 조직할 권리를 인정받긴 했지만, 이들의 활동 범위는 서울시에만 국한됐다.

라이더유니온은 대리운전노조 합법화를 특고 노동권 보호 여론에 따른 정부의 ‘전향적 결정’이라고 본다. 대리기사는 배달원과 마찬가지로 소속 없이 무작위로 콜을 받고 월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는데, 이처럼 노무관계가 불분명한 대리기사가 노조로 인정받은 것은 ‘전속성’ 기준을 완화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앞서 8년간 대리운전기사들은 노조 설립을 시도했지만 전속성 문제로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특고ㆍ플랫폼 노조는 인정 추세...실질적 교섭권 없어 한계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2018년 방송연기자들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 관련 판결 이후로 특고의 ‘노조 할 권리’ 해석 문제는 사실상 해결이 됐다고 본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코미디언, 성우 등의 노조권을 인정하며 그 기준으로 소득 의존성, 전속성 및 사업자의 계약내용 일방 결정 여부, 지휘ㆍ감독관계 여부 등 6가지를 제시했다. 대리운전노조 승인도 이 기준이 근거가 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대법원이 제시한 요건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니 전속성이나 소득의존성이 다소 낮은 대리기사들의 노조도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 승인은 물론 향후에도 특고ㆍ플랫폼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들이 합법 노조를 설립해도 대리점ㆍ플랫폼을 통한 간접고용 노동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교섭권 등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는 점이다. CJ대한통운이 2년 넘게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도 노조법상 교섭 상대가 본사가 아닌 대리점이기 때문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현 노조법의 '근로계약'이라는 기본적인 용어나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조차 특고와는 맞지 않아 이들이 노조를 만들어도 권리행사가 어렵다”며 “노조법에 특고ㆍ플랫폼노동에 대한 별도 장을 만드는 등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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