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9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ㆍ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앞선 3일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임명장 수여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청문보고서가 여당 단독으로 채택되자마자 임명한,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남은 임기 동안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 의제인 ‘한반도 평화’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에서 박지원 원장ㆍ이인영 장관에게 “막혀있고 멈춰있는 남북 관계를 움직이는 소명이 두 분에게 있다”고 역할을 주문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특히 박 원장을 향해 “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며 가장 오랜 경험과 풍부한 경륜을 갖춘 분”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박 원장은 이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과거 국정원의 흑역사를 청산하는 개혁으로 보답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장관을 향해서도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장관은 “한반도 평화의 문이 닫히기 전 평화의 문을 열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며 “한걸음씩 전진해 대통령 재임 중 평화의 숨결만큼은 반드시 실감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청와대가 대북정책을 이끌 이인영ㆍ박지원 투톱 인선 절차를 서두른 데는 남은 임기가 채 2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야당이 박 국정원장과 관련해 제기한 ‘30억달러 대북송금 이면합의 의혹’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한 데 대한 자신감도 반영됐다.
당장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야당이 30억달러 이면합의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왜 박지원 국정원장을 임명했느냐고 야당이 따지고 있다”며 “(이면합의서는) 정부 내에 존재하지 않는 문서”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문서가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문서인지 청와대ㆍ국정원ㆍ통일부 등 관련 부처를 모두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만약 문건이 있었다면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때 가만히 있었겠냐”며 이면합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면 부인했다. 야당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만큼 박 국정원장 임명 절차를 늦출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청문보고서 채택 3시간여만에 임명을 재가하고 만 하루가 안 돼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대통령의 박 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가족에게 선물한 축하 꽃다발에도 ‘신뢰’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날 수여식에는 박 국정원장의 딸과 손자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박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박 국정원장의 손자에게 무릎을 굽혀 헬리오트로프, 송악, 아게라덤으로 구성된 꽃다발을 전달했다. 헬리오트로프는 헌신과 성실, 송악과 아게라덤은 신뢰를 의미한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박 원장 손자에게 청와대 기념품도 전달했다. 이어 박 원장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기념촬영도 했다.
이인영 장관의 부인 이보은씨에게는 ‘평화와 희망’을 의미하는 데이지와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꽃말을 가진 은방울 꽃이 담긴 꽃다발을 전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