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서 일하다 심정지 행인 살려 낸 포스코건설 직원들

입력
2020.07.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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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장, 사무실 나서다 쓰러진 남성 발견
안전관리팀장은 심폐소생술로 목숨 구해
직원들은 119 연락...의식잃은 남성 회복해 퇴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길래 ‘어디 돌부리에 걸렸나’ 했지요. 그런데 일어나질 못하더라고요. 가까이 가서 보니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숨을 쉬지 않더라고요."

지난 21일 오전 6시47분쯤 평소처럼 경북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내 사무실로 출근해 바로 옆 현장으로 나선 박정업(58) 포스코건설 소장은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앞을 지나던 남성이 넘어져 일어나지 않자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직원들과 포스텍 학생들까지 달려와 부축했지만, 남성은 전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박 소장은 불현듯 현장 내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옥승현(43) 안전관리팀장이 떠올랐고 다급히 그를 불렀다.

박 소장의 목소리에 곧장 달려 온 옥 팀장은 쓰러진 남성이 심정지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깍지 낀 양손으로 가슴압박을 시도하자 하얗게 변했던 남성의 얼굴은 금세 혈색이 돌아왔다. 하지만 '고비를 넘겼다' 싶어 압박 횟수를 늦추면 이내 하얘졌다. 결국 사무실에 있던 비상용 심장제세동기(AED)까지 꺼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옥 팀장을 도우며 남성의 상태를 지켜보던 직원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쉴새 없이 119신고 전화를 걸었다.

박정업 소장은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한 1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며 "직원 여러 명이 언성을 높이며 119로 계속 전화하는데도 차분히 조치하는 옥 팀장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했다"고 말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구급대원들이 들것으로 환자를 옮기자, 옥 팀장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식을 잃었던 남성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 곧바로 회복해 퇴원했다. 가족들은 건설 현장을 수소문했고 직원들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옥승현 팀장은 안전관리자로 현장에서 안전모 착용 등 사고 위험을 관리하지만 인명사고 시 응급조치까지 맡고 있지는 않다. 근로자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다쳤을 때 응급조치에 나서는 직원은 보건관리자로, 공사금액 800억원 이상(아파트 약 700세대 규모) 현장에 상주한다. 그가 근무하는 포스텍 캠퍼스 안 인큐베이팅 건설 현장은 근로자 70명이 일하는 소규모 현장이라 보건관리자가 없다. 옥 팀장은 평소 수영을 비롯한 운동을 좋아해 적십자 수상안전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인명구조 교육을 받은 덕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남성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현장에서 쓰러진 근로자 2명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옥 팀장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직원 중 누군가가 심폐소생술이나 심장제세동기로 쓰러진 남성을 살려냈을 것"이라며 "의식을 잃은 분이 다행히 사람이 많은 건설 현장 옆을 지나다 넘어진 것을 보면 하늘이 그 분의 목숨을 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 포항남부소방서는 심정지 환자에게 신속ㆍ정확한 응급조치로 소중한 생명을 지킨 옥승현 포스코건설 안전관리팀장에게 하트세이버(Heart Saver) 인증서를 수여할 계획이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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