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죽게 생긴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뾰족한 수가 없잖아요.”
체념에 가까웠다.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현실적인 허탈감으로 읽혔다. 앞날에 대한 걱정조차 불필요해 보였다. 서울 동대문에서 40년 넘게 옷장사로 굴러온 A사장이 전한 최근 소상공인들의 분위기는 그랬다. 칠순을 앞둔 그는 “이젠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다”며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옆 가게 주인이 인사도 없이 갑자기 문을 닫고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말로 참담한 심정을 대신했다.
소상공인들의 붕괴가 심상치 않다. 기본적으로 허약한 체질인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속수무책이다. 코로나19에 걸려서 죽거나, 장사가 망해서 손가락만 빨다가 죽거나 매한가지란 말은 소상공인들에겐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소상공인들의 현주소는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자영업자는 총 547만3,000명으로 6개월 전에 비해 13만8,000명이나 줄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던 지난 2009년 상반기(20만4,000명) 이후 1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자영업자의 95% 이상이 소상공인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코로나19도 버거운데 악재만 쏟아진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보다 1.5% 오른 8,720원으로 정해졌다는 소식 또한 예외는 아니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가장 낮은 인상률임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소상공인 입장에선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듯한 충격이다. 서울 중구에서 건어물 가게만 45년 동안 운영해 온 B사장은 “버는 돈은 하나도 없는 데, 인건비까지 올려주고 나면 뭐가 남겠느냐”며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어떻게 입에 풀칠을 하고 살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반짝했던 지역화폐는 언 발에 오줌만 누고 나간 꼴이란 게 소상공인들이 건넨 현장의 목소리다. 6월에 풀렸던 지역화폐가 소진된 이후, 이달부터는 다시 파리만 날리고 있다는 게 이들의 푸념이다.
이 와중에,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소상공인연합회는 때 아닌 내분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상태다. ‘춤판 워크숍’과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인 배동욱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연합회 노조로부터 업무상 횡령과 배임, 보조금관리법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노조측은 “소상공인연합회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인데, 배 회장의 위선에 경악과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 회장은 춤판 워크숍 문제에 대해선 사과를 했지만 노조측의 사퇴 요구는 일축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인데 안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절망 섞인 원성이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자자하다.
소상공인은 경제를 움직이는 ‘실핏줄’이다. 골목 상권의 핵심인 소상공인이 살아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국가 경제도 튼튼해진다는 건 자명하다. 소상공인들의 생태계가 파괴될 경우 돌아올 충격파는 코로나19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 실핏줄은 소리 소문 없이 터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