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은 부동산 정책과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국회 연설에 나섰을 땐 “생산활동을 통한 수익보다, 땅값 상승 수익이 더 큰 사회경제 구조를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며 ‘지대 추구의 덫’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폈을 정도다. 따라서 추 장관으로서는 최근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한 자신의 SNS 메시지에 대해 “법무장관 일이나 잘 해라”거나, “서울시장이나 대선을 겨냥한 ‘자기 정치’”라는 비판이 쏟아진 걸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추 장관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비(非)주무 장관이 부동산 정책에 의견을 낸 것 자체를 시비하는 걸로 생각했다면, 그의 이해력은 자리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법무장관도 부동산 정책에 의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책임 있는 국무위원이라면 국무회의 같은 정부 내 국정 채널에서 먼저 의견을 개진하고, 대외적으로는 조율된 메시지가 나가도록 힘을 보탰어야 한다는 게 이번 비판의 본질이다.
안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 임기 3년을 넘기며 도처에서 정제되지 못한 국정 메시지가 중구난방으로 돌출돼 큰 혼란을 빚고 있다. ‘잠룡’들로 불리는 정치 야심가들은 물론이고, 추 장관을 포함한 당정 최고위 인사들까지 국정현안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양상이다. 질서나 금기 같은 것도 무너졌다. 대통령이 우스워진 건지, ‘아무 말’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압도해 되레 국정이 뒤엉킬 지경에 이르렀다.
‘기본소득론’은 설익은 ‘아무 말’이 국정을 난맥에 빠트린 대표적 사례다. 당초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하위 70%’에게 지급키로 했다. 하지만 김경수 경남지사가 1인당 10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주자고 선수를 치고, 진작 기본소득제를 주장해온 이재명 경기지사가 적극 호응하고 나서면서 여당 내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사실 김 지사가 국민 1인당 100만원씩, 무려 51조원의 국고사업을 주장하면서 내놓은 재정대책이라고는 “재정부담은 내년 조세수입 증가를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어설픈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국정 외곽의 그런 ‘아무 말’에 휘둘린 여당은 결국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쪽으로 선회했다. 재정대책이라곤 “고소득 가구들은 마땅히 지원금을 정부에 기부(반납)할 것”이라는 황당한 기대뿐이었는데, 실제 기부자는 거의 없어(0.2%) 그 기대는 결국 멍청한 환상임이 판명됐다.
‘아무 말 대잔치’는 ‘너도나도 맥락 없이, 생각 없이, 혹은 당황하여 입에서 나오는 말을 멋대로 내뱉는 어지러운 상황’ 정도의 뜻인 신조어다. 물론 당정 유력자들의 국정 언급이 아무 맥락이나 생각 없이 나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정과 관련해 앞뒤 없이 중구난방으로 돌출되는 설익은 ‘아무 말’들이 유난히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완성론’만 해도 그렇다. 여당 원내대표가 새삼 세종시 완성론을 공식 제기하려면 적어도 타당성 검토나 구체적인 추진 청사진이라도 준비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공감을 모으는 과정도 있어야 했다. 그런 과정이 전혀 없다 보니, 부동산 정책 실패를 모면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이 확산되고, 세종시에선 이 와중에 또 다시 집값 앙등 광풍이 몰아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교언난덕(巧言亂德)이라고 했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인데, 요즘 우리 상황에 빗대 풀면 ‘국정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설익은 정책과 메시지의 난립은 나라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혼란을 부르고 국민을 괴롭히는 교언들이 난무하지 않도록 대통령이라도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