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뒤 한국 경제의 일본 의존도가 더욱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대일(對日) 수입 비중이 9.5%에 그쳐 1965년 통계 작성 후 처음 1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일본과의 경제적 연결성이 약화되는 와중에 수출규제가 가속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26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산업계 영향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 수입액(5,033억4,000만달러) 중 대일 수입액(475억8,000만달러) 비중은 9.5%였다. 1978년 40%에 달하던 대일 수입 비중은 1997년(19.3%)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 15% 안팎을 유지하던 수치는 2016년 11.7%, 2017년 11.5%, 2018년 10.2% 등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지난해 처음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분기별 대일 수입 비중도 지난해 1분기 9.8%에서 2·3분기 각 9.5%, 4분기 9.0%로 갈수록 하락했다. 반면 지난해 전체 소재부품 수입에서 일본산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분기 15.7%에서 2분기 15.2%, 3분기 16.3%, 4분기 16.0%로 수출규제 전후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다른 산업에서 자국 수출이 줄어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대한상의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핵심 품목 국산화, 수입 다변화 등의 노력으로 소재부품 공급에 큰 차질을 겪지 않았다"며 "여타 산업에서 일본 수입 비중이 줄고 있는 것은 일본과 경제적 연결성이 느슨해지는 추세 속에서 수출규제가 이를 가속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일본 수출규제 영향을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최근 대한상의와 코트라가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 30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기업의 84%는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피해가 '없었다'고 답했다. '피해가 있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피해 내용으로 '거래시간 증가'(57%)가 가장 많았고 이어 '거래규모 축소'(32%), '거래단절'(9%) 등의 순이었다.
일본 수출규제가 기업 경쟁력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91%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85%는 우리 정부의 조치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정책 중 도움이 된 것으로는 연구개발 지원(42%), 공급망 안정화(23%), 규제개선(18%) 등이 꼽혔다.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산업계 피해가 제한적인 점은 다행이지만 한일 갈등의 불씨가 상존하고 있는 만큼 추가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는 "앞으로 수출규제에 따른 추가 리스크를 점검하고 소부장 정책도 보완해야 한다"며 "일본과 교역비중이 줄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인 만큼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