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인 내가 또래 여성들을 만나서 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평균수명은 예전보다 늘어났고, 사회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결혼을 염두에 두거나 선택한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의 위험을 안고 있고,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은 사회 제도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일해야 하니 일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답을 명확하게 내릴 수 없는 문제라 대체로 ‘지금 하는 일을 잘하면 새로운 기회가 다음에 또 올 것이다, 대신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거기에 유연하게 적응하자’라는 결론을 내고는 한다.
그런데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여성이 지속 가능한 일을 꿈꾸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피해 여성이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일하는 동안 수행해야 했던 일들은 다음과 같다. ‘여성 비서가 함께 뛰면 기록이 단축되기 때문에’ 주말 새벽 박 전 시장의 마라톤에 동참하도록 요구받았고, 일부 직원들은 시장의 결재를 받기 전 여성 비서들에게 시장의 기분을 좋게 만들도록 요구했다. 박 전 시장이 운동을 마치고 씻을 때 속옷을 챙기거나, “네가 혈압을 재면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좋지 않다”는 성희롱 발언을 박 전 시장으로부터 들으면서도 그의 혈압을 측정하는 것, ‘여성 비서가 해야 시장이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실 내 침대가 딸린 내실에서 자는 박 전 시장을 깨우는 것도 피해 여성이 한 일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비롯해, 이런 사건들은 위계에 따른 성폭력인 동시에 일터에서 벌어진 성폭력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계를 잘 꾸려나가기 위해, 혹은 가치나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일터로 나간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의 얼굴을 한 다양한 방식의 성폭력을 경험한다. 심지어 어떤 조직들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방조한다.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는 근무하는 약 4년 동안 20명의 서울시 직원들에게 고충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다시 비서로 와달라거나, (박 전 시장이) 몰라서 그렇다거나, (네가) 예뻐서 그렇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지난 2017년 보도된 한샘가구 사내 성폭력의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인사팀장에게 또 다른 성폭력을 당할 위험에 놓이기도 했다.
여성을 일터에서 내모는 것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여성이 겪는 일들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조직과 사회의 분위기 그 자체다. 일은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일로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어떤 부분에서는 일로서 자아를 실현한다. 여성이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폭력은 세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증거이자, 그 기울기를 더욱 크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이유로 일과 일터를 포기하는 여성들이 더는 없도록, 성폭력을 멈춰라.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를 더욱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하라. 여성에게도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지속가능하게 일하며 효용감을 느낄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