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을 위해 추진하던 ‘합동조사단’ 구성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인권위 조사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다. “조사 대상인 서울시가 조사 주체가 될 수 없다”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예고한 피해자 측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는 22일 ‘피해자 지원단체 2차 기자회견에 대한 서울시 입장문’을 통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ㆍ성추행 의혹에 관한 인권위 조사가 이뤄질 경우 적극 협조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직접 방문, 4차에 걸친 공문 발송 등을 통해 피해자 보호 단체에 지속적으로 합동조사단 참여를 요청했지만, 만남이 성사되지도 답변을 받지도 못했다”며 “피해자 지원단체가 서울시 진상규명 조사단 불참 의사를 밝힘에 따라 합동조사단 구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에 서울시는 시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15일 제안했다가 여성단체 등이 응하지 않자 17일에는 시 관계자 없이 외부 전문가만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 구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는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 등에 공문을 보내 22일까지 조사단 조사위원을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여성단체와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이날 “서울시는 책임의 주체이지 조사의 주체일 수 없다. 인권위가 조사를 진행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는 피해자 지원단체의 진상규명 조사단 참여 거부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피해자와 지원 여성단체의 의사를 존중해,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해 조사를 의뢰할 경우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현재 진행 중인 성추행 방조ㆍ묵인, 피소사실 유출 등과 관련한 경찰ㆍ검찰 수사에도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외부 기관이 빠진 시 자체 조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조사 과정에서 직원들이 말 맞추기나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도 있어 인권위 조사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도 인권위에서 조사 대상으로 지목하면 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황 대변인은 “당연히 적극적으로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시의 합동조사단 구성이 불발되면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등과 관련한 진상규명은 검ㆍ경 수사와 인권위 조사 ‘투 트랙’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진실이 규명될지는 미지수다. 검경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과 서울시 내부의 성추행 방조ㆍ묵인 의혹을 수사하다 보면 이번 사태의 핵심인 성추행 의혹도 어느 정도 사실 규명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있으나 박 전 시장 사망으로 명명백백한 진실 규명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수사기관이 아닌 인권위가 얼마나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을지도 불투명하다. 다만, 서울시의 성 비위 관련 대응 및 처리 문제점이나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 등을 위해서라도 인권위 조사는 의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여성 직원을 대상으로 한 초점집단면접조사(FGI) 등을 통해 왜 성희롱적 문화가 여전한지, 앞으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시스템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