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고 보는 주택공급 훈수, 민심 달래려다 투기만 부추겨

입력
2020.07.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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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 가격 단기 급등 소비자에 부담"
"정책 효과 반감에 불신만 커질 것"

“정부가 나서 전 국민에게 미리 땅 사두라고 신호를 주는 거나 다름 없다.”

“주택공급 정책은 보안이 생명인데 유리로 된 회의실에서 논의를 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택공급 확대" 지시 이후 이달 내내 쏟아지고 있는 백가쟁명식 해법에 부동산 업계와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뿔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정청 곳곳에서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오히려 투기수요만 부추기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떨어진 정부 정책 신뢰를 더 추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곡ㆍ태릉ㆍ은마ㆍ세종... 거론만 되면 집값 '들썩'

22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문 대통령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계속 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대신 “태릉골프장 부지 등 국공립 시설 부지를 발굴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최종 결정도 아니고 검토를 하겠다면서 특정 지역을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린벨트 해제 검토 소식에 강남권 일부 지역에서 투기 조짐이 나타나고 반대 여론이 커지자 급히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태릉골프장 역시 그린벨트인데다 ‘대통령까지 언급했다’는 이유로 인근 갈매지구 등에 투기 수요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발표 예정인 정부의 공급대책에 재건축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도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강력 반대했던 서울시는 대안으로 "재건축ㆍ재개발을 활성화하자”고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등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단지들의 집값이 출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당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론화하자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한 충청권 부동산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 6ㆍ17 대책 후 한달 사이 집값이 1.46% 오르는 등 전국에서 가장 부동산 열풍이 뜨거운 곳이다.


"투기하라고 신호주나... 정책 불신 커질 것"

시장에서는 지금이 2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7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한강을 낀 여의도와 용산을 싱가포르와 같이 국제업무중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이른바 '통개발' 구상을 내놨다.

이 발표를 기점으로 서울 부동산값은 여의도와 용산을 중심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결국 서울시는 한달여 뒤 "주택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라며 전면 보류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투기 수요가 꿈틀대는 시점에 특정 지역 개발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 어떤 부작용을 불어오는 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태릉골프장 이전에만 최소 5년, 육군사관학교 이전은 더 오래 걸릴텐데 근시안적이고 즉흥적인 방안이 쏟아지며 시장에 오히려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확정 안된 방안들이 여과없이 공개되면 정상적으로 시장에 거래될 물건들이 사라지고 가격이 단기 급등하는 등 소비자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불신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줬다 실현되지 않을 경우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실현이 되더라도 정책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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