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부동산 전문가들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다. 모이면 부동산 얘기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 심정 때문일 게다. 때로는 배고픔보다 배아픔이 더 힘들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지역 사람들은 ‘우리도 세금 좀 내보자’며 아우성이다. 기회를 잡지 못했거나 돈이 없어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한탄한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집값이 폭등하는 것은 기현상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계속 집값이 오르니 절망감만 더하다.
노무현 정부 때의 기시감이 어른거린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 해도 ‘그놈'은 신기루처럼 멀리 달아난다. 건설업자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가 최고였다고기억한다. 지방까지 분양이 잘되면서 아파트 한 채당 1억원이 남았다. 200가구를 분양하면 200억원이 남았다는 얘기다. 지금도 분양만 하면 대박이 터진다.
공급 대책을 내놓으라는 여론의 등쌀에 급기야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까지 검토하다가 접었다. 서울지역 그린벨트를 풀어도 관련 법령 테두리에서 주택을 지으려면 기껏 1만 가구가 나온다. 그것도 엄청난 반발을 감수해야 하고, 그렇다고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포기했다.
태릉골프장 부지를 비롯한 국공립시설 부지 발굴 방안도 제시됐다. 하지만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유휴부지에 죄다 집만 지어버리면 앞으로 수시로 다가올 전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대형병원, 입원실 같은 시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막는다. 더욱이 서울에 온통 집만 지어서는 도시 경쟁력이 갖춰질 리 만무하다.
수도 이전도 부동산 정책으로는 허황한 발상이다. 정책의 실패를 덮을 정치적인 국면 전환용이라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 중에 집 팔고 내려간 사람은 없다. 죄다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갔다. 서울서 만나는 저녁 약속은 금요일에 주로 한다. 그래서 주로 금요일에 서울에서 회의를 만든다고 한다. 국회가 내려간다고 국회의원들이 집을 팔고 가지는 않을 거다. 청와대가 간다고 지금 청와대에 근무하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도 않을 거다.
모든 사람이 서울에 살려면 홍콩처럼 초고층 빌딩을 마구 세워야 한다. 서울은 지금도 만원이다. 서울 주택은 공급 탄력성이 ‘0’에 가깝기 때문에 공급이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보유세 인상 등을 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1기 신도시의 인프라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주택 공급 부족도 문제지만 유동성 과잉 공급이 더 문제다.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코로나19로 푼 돈마저 투자가 아닌 투기로 연결된다. 지난 5월 중 시중 통화량(광의 통화ㆍM2)이 3,050조원이다. 1986년 통계 편제 이후 최대 규모다. 아파트 한 채가 10억원이라면 300만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돈이 넘치니 갈 곳은 뻔하다. 제로금리에 가까우니 부동산이나 증권시장을 향한다.
자동차가 급증하던 시절 도로를 마구잡이로 건설했다. 서울에 전차가 사라진 것도 자동차 회사의 로비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도로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도로 확충 속도가 차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차량의 도심 진입을 억제한 것이다. 물론 돈 있는 사람만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이 공정한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공급 정책이 능사가 아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깜짝 놀라 공급 정책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또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자칫 서울이 초고층 빌딩으로 채워진 홍콩처럼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