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은 다른 나라 이야기" 국내 제조업 해외 의존 오히려 늘었다

입력
2020.07.22 17:21
지난해 우리나라 리쇼어링 지수 전년보다 감소
최대폭 상승하며 성과 거둔 미국과 뚜렷한 대비
전경련 "과감한 인센티브 주고 수혜기업 늘려야"

전북 익산시 패션주얼리단지는 국내 대표적 유턴기업 전용 산업단지다.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즉 리쇼어링을 촉진하려 2013년 유턴기업법이 제정될 무렵 본격 가동된 이 단지는 그러나 여태 적막감이 감돌고 단지 곳곳은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돼 있다.

한 입주회사는 중국에서 연 3,000만달러 수출 실적을 올리다가 국내 유턴 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경영난에 빠졌다. 연 수출액은 유턴 이전의 10% 수준인 300만달러로 급감했고, 고용인원은 500명에서 2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또 다른 입주사는 공장 준공 지연, 숙련인력 부족 등으로 품질경쟁력이 저하돼 유턴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생산할수록 적자인데 자산을 매각하자니 헐값 처분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각국이 리쇼어링 정책에 더욱 매진하는 가운데 지난해 미국은 정보통신(IT)업체 중심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리쇼어링 성과를 올린 반면 한국은 해외 생산 의존도가 오히려 더 심화한 걸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AT커니(Kearney)와 미국 생산자연합회(CPA) 자료를 이용해 한국과 미국의 리쇼어링 현황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2일 밝혔다.

AT커니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 총산출 중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4개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 변화를 표시한 '미국 리쇼어링 지수'는 2018년 -32에서 지난해 +98로 대폭 상승했다. 최근 10년을 통틀어 가장 큰 상승폭이다. 플러스는 리쇼어링 확대를, 마이너스는 역외 생산 의존도 증가를 각각 뜻한다.

전경련이 같은 방법으로 측정한 한국의 리쇼어링 지수는 2013년(-23) 이후 줄곧 마이너스였다. 특히 미국이 대폭적인 지수 상승을 기록한 지난해 한국 지수는 전년(-11)보다 더욱 낮아진 -37을 기록했다. 역외 생산 의존도가 더 커진 것이다. 전경련은 "그간 문제로 지적된 대중국 공급망 의존도는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대신 베트남산(産)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걸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수입국 범위를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확장한 CPA 리쇼어링 지수에서도 미국은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증가율을 보였다. 19개 제조업 분야 중 컴퓨터·전자 제품의 리쇼어링 성과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전경련은 미국이 반도체, 의약품 등 핵심 분야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리쇼어링 지원 정책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해석했다.

유럽의 리쇼어링 성과도 우리보다 나았다. 전경련은 유럽통계청 조사를 인용, 유럽연합(EU) 역시 2014~18년 253개 기업이 유턴했으며 이 중 제조업이 85%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간 유턴 기업 중 고용정보가 공개된 99개 기업에서만 1만2,84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52개사가 유턴해 975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3년 유턴기업법 시행부터 지금까지로 기간을 넓혀도 국내로 복귀한 기업 수는 74개에 불과하다.

문제는 앞으로도 리쇼어링 실적이 나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외국은 막대한 자금과 수십년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리쇼어링을 추진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인건비, 법인세, 각종 규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몇 가지 인센티브 제공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미국처럼 유턴을 현실화할 과감한 지원과 함께 미국·EU처럼 중간재 수입의 국내 대체도 유턴으로 인정하는 등 수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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