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조깅을 하던 아흐마우드 엘버리. 두 명의 백인에게 총격을 받아 숨졌다.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파우더호른에선 조지 페리 플로이드가 경찰의 강압적 체포에 질식사했다. 6월 12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패스트푸드 식당 앞에선 레이샤드 브룩스가 음주 측정 뒤 체포하려던 경찰에 저항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죽은 이들은 모두 흑인이고, 이 모든 일은 2020년의 사건이다. 1863년 노예해방선언 이후 157년, 인종과 민족과 출신국가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이 통과된 이후로부터도 56년,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 제임스 볼드윈의 책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과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를 읽는 것은 과거가 아닌 동시대를 읽는 일이다.
1924년 미국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난 볼드윈은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사에 인종 문제에 관한 중요한 견해를 제시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흑인이자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소설, 에세이, 평론, 희곡 등을 써내며 작가이자 민권운동가로 살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흑인이란 정체성을 심어 준 사람 중 하나로 볼드윈을 꼽을 정도다. 국내에는 그간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가 한국에서도 정체성 문제가 주요 화두로 등장하면서 지난해 대표작인 ‘조반니의 방’이 소개됐다.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는 1963년 출간된 볼드윈의 에세이 ‘The fire next time’을 번역한 책이다.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조카 제임스에게 보낸 편지와, 인종과 신앙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 두 편으로 이뤄져 있다. 논쟁적이면서도 명료하고, 분노하면서도 성찰하는 이 두 편의 에세이는 볼드윈을 '가장 중요한 흑인 작가'로 부상케 했다.
책에서 볼드윈은 14살 조카에게 “그들의 믿음과 행동, 그리고 너로 하여금 견디도록 하는 일들은 네 열등함의 증표가 아니라 그들의 비인간성과 두려움의 증표라는 것을 부디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조카를 수신인으로 두고 있지만 모든 흑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한 이 글을 통해, 볼드윈은 미국이 흑인과 백인 둘 다로 이뤄진 국가임을, 서로의 강력한 필요성을 인정해야만 함을 역설한다.
에세이를 통해 드러나는 볼드윈의 목소리가 선언적이라면, 소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서는 좀더 서정적이다. 영화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배리 젠킨스 감독이 2018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기도 한 이 작품은, 성폭력 범죄에 연루된 젊은 흑인 연인의 사랑을 그린다. 1970년대 뉴욕, 스물두 살 청년 포니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열아홉 살 연인 티시는 작은 다락방에서 그들만의 소박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 미래는 포니가 푸에르토리코 출신 여성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면서 산산조각난다. 포니가 강간범으로 지목된 이유는 하나다.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범법행위자로 의심받는 것은 소설 속 설정뿐만이 아니다. 볼드윈 역시 열세 살 때 백인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았다. 도심에 있는 도서관에 가기 위해 흑인 거주 구역이 아닌 백인 구역을 활보했다는 이유였다. 제목이 된 ‘빌 스트리트’는 ‘모든 흑인이 태어난 곳’을 뜻한다. 때문에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역설적으로 빌 스트리트가 상징하는 모든 흑인들이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 연인에게 적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함께 분노하며 최선으로 사건에 임하는 백인 변호사, 폭행죄로 체포될 뻔한 포니를 위해 대신 증언해주는 슈퍼의 이탈리아인 여주인. 오로지 다른 피부색만을 기준으로 구분 짓고 미워하기엔, 인간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볼드윈은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볼드윈은 1987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떠나고 30여년 뒤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Black Lives Matter'를 외쳐야 한다. 동시에 함께 싸우는 목소리 또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니, 사랑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볼드윈의 희망을 우리도 여전히 품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