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6개월을 넘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기간, 2차 유행 가능성은 물론, 경제에 미치는 영향 모두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이 성공적인 방역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에서도 선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장담할 수는 없다. 정부는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낼 핵심 대책으로 ‘한국판 뉴딜’을 꺼내 들었고, 기업들 역시 ‘뉴노멀(새로운 시대)’에 대응해 각종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당장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 수정본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로 -2.1%를 제시했다. 역성장이긴 하지만 성장 전망이 공개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고, 신흥개발도상국 평균(-3.0%)보다도 나은 수준이다.
IMF는 특히 선진국 중 유일하게 한국이 내년 말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차 확산이 없는 경우 한국의 올해 성장률로 -1.2%를 제시했으며, 한국을 “주목할 만한 특이 국가(notable outlier)”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 같은 ‘긍정 평가’의 근간에는 대규모 봉쇄조치(록다운ㆍlockdown) 없이 일궈낸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이 있다. 아직까지도 일일 확진자가 수만명에 달하는 미국 등에 비해 빠르게 확산세가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 디지털, 비대면 등 코로나19 시대 경제에 강하다"면서도 "무엇보다 최대 강점은 의료와 방역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코로나19만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코로나19 장기화에 한국 경제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면서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수가 큰 나라라면 국내 문제가 해결되면 '나홀로' 반등이라도 가능하겠지만, 한국은 주요 교역국에서 코로나19가 잡히지 않는 한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관건은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버틸 맷집과 적응 능력이다. 정부가 각종 코로나19 대응 대책과 함께 디지털,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를 중심으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버팀목 역할이 없을 경우 '소득감소→수요위축→대량실업'의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판 뉴딜의 '버팀목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했다. 당장의 경기 침체를 이겨내고, 경제ㆍ사회구조 전반의 대대적 변화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 역시 업무 환경부터 채용 방식, 공급망 생태계까지 '모두 바꾼다는 심정'으로 변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 수출의 20%를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에 역점을 두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K칩 시대'로 명명한 국내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구상을 밝힌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 산업계 '맏형'으로서 중소 협력사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통한 인재 양성 체계를 갖춘다는 것이 골자다. 수입 의존도가 현격히 높은 반도체 제조장비 업계와, 국내에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시스템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 업계를 중점 지원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의 완결성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 영업을 펼쳤던 대형 유통 기업들은 비대면(언택트) 쇼핑 강화 등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오프라인 점포 철수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롯데쇼핑은 전체 700여개 점포 중 올해 안에만 백화점 5곳, 마트 16곳 등 121개 매장을 폐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침체된 외식 시장을 돌파하기 위해 가정간편식(HMR) 판매 뿐 아니라 레스토랑간편식(RMR) 배달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 유가 급락 등의 타격을 입은 정유업계도 전통적인 석유 사업에만 의존해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신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활용해 드론 물류 및 수소 충전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LG화학 등 전기차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전기차 이용자의 빅데이터를 수집ㆍ분석하는 등 다양한 사업 발굴에 여념이 없다. SK에너지 역시 태양광 설비 등을 설치해 주유소를 친환경 에너지 사업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유연근무제(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제도) 등 근로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고 비대면 채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근로형태 및 노동환경 전망'을 조사한 결과 85%의 기업이 "현재 유연근무제를 실시 중이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