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기자 A는 13년 전 대구교도소의 B에게 편지를 보냈다. B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문화재 도굴범으로 여러 언론이 문화재 관련 정보를 얻으려 그와 접촉했다. 편지를 보내고 교도소로 찾아가 면회하는 정성이 통했는지 B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A에게 제공했다. 당시 B가 ‘OOO 기자 앞’이라 적어 회사로 보낸 편지를 보며 그 사연을 물었다. “정보만 얻기 위해 잘 보이려 하기 보다는 믿음을 주려 했다”는 게 당시 A의 답이었다.
4년 뒤 B가 석방되자 언론은 물론 수사기관까지 그를 만나려 했지만, 그는 “A만 보겠다”고 했고, 실제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A를 찾았다. 2011년 출소까지 5년에 걸쳐 수 백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기다린 A의 진심이 통한 것. 그런데도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A는 몇 차례 만남과 몇 번의 기사를 쓴 후 B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A처럼 교도소에 편지를 보내는 기자는 드물다.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신뢰를 쌓으려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게 속도가 경쟁력으로 여겨지는 시대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기자 C는 얼마 전 구속됐다. 그는 기자 시절 교도소에 있는 D에게 다섯 통의 편지를 보냈다. 분명 그가 정성을 쏟았다는 부분은 평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그의 편지들을 읽어보면 ‘너무 많이 나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D의 아내를 비롯해 가족, 친지까지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이며 ‘검찰은 이번에 예전 수사에서 부실했던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는 게 목표’라는 설명과 함께 이에 따라 처벌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부분을 읽을 땐 섬뜩했다. 스스로는 D에게 믿음을 사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갇혀 있는 사람에게 가족에 대한 언급은 ‘협박’이나 다름없다. 법원도 C의 구속을 결정하며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D)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들이 있다”고 밝혔다.
C는 왜 그랬을까. 기자 한 사람이 특종 욕심에 비뚤어진 행동을 저질렀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언론계를 보면 C에게만 국한된 것 같지 않다. 모든 언론이 온라인 기사의 비중을 높이면서 속도가 강조되고 있다. 취재와 기사 쓰는 과정의 팩트 확인은 예전보다 소홀하고, 비판 대상의 입장 반영도 부족하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인터넷에 올려 더 많은 클릭 수를 얻어 내야 한다는 강박이 “(사실 관계 확인이 좀 덜 돼도) 일단 쓰고 (문제 생기면 그 때가서) 고치자”라는 ‘나쁜 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신문의 활자처럼 기록으로 남지도 않고 쓰고 고쳐도 흔적이 남지 않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러는 사이 ‘틀린’ 기사는 늘고, 취재 윤리는 ‘나중 문제’로 취급 받곤 한다. 더 큰 문제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기자와 미디어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C의 구속을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온라인 뉴스팀을 맡은 나에게 취재 윤리란 무엇인가. 혼자서 때로는 팀원들과 기사 거리를 찾고 그 처리 방법을 고민하면서 사실 관계 확인이나 취재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을 충분히 고려했나. 누군가로부터 믿음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번 잃어버린 뒤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