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 감축’ 방안을 백악관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전격 실행에 옮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주한미군 규모 수정을 제한하는 ‘국방수권법’이 9월말 종료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경우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반대하고,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군사 전략과도 앞뒤가 맞지 않아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이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합참이 백악관 지시로 전 세계 미군 재배치 및 주둔 규모 감축과 관련해 주한미군 구조를 재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올해 3월 한국을 포함한 상당수 재검토 방안을 백악관에 제시했다고 전했다.
WSJ 보도에 더해 이날 미 국방부가 배포한 ‘국가국방전략(NDS) 이행: 1년의 성취’ 자료에 미군 재배치ㆍ재할당 이슈가 포함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자료에서 올해 말까지 성취할 10가지 목표 중 하나로 “각각의 전투 사령부가 작전 공간을 최적화하기 위해 기존 임무ㆍ태세를 통합하고 축소하는 백지 상태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부ㆍ중앙ㆍ유럽사령부 등과 함께 한국이 들어간 인도ㆍ태평양사령부도 몇 개월 내에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물론 NDS 보고서는 합참이 주한미군 감축 검토안을 제출했다는 보도와 시점은 맞지 않다. 하지만 미 국방부가 글로벌 미군 인력 구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방위비 협상 문제로 대치 중인 한국이 별도로 검토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여러 인사들에게 취임 후 줄곧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을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탓에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 때부터 감축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이를 강력히 견제한 것은 의회였고, 핵심 수단이 국방수권법이다. 미 의회는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서 주한미군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이려면 국방장관이 미국의 안보 이해에 부합하고 이 지역 동맹국들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으며, 또 한국 등 동맹국들과 적절하게 상의했다는 사실을 의회에 입증하도록 강제했다. 해당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에 어떤 예산도 사용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미군 주둔 규모를 바꾸지 못하게끔 제동을 건 셈이다. 의회는 지난해 통과시킨 2020 국방수권법에선 감축 기준선을 2만8,500명으로 상향해 견제 수위를 더욱 높였다.
문제는 효력 기한이다. 국방수권법의 제동 장치는 매년 입법이 필요하다. 2020 국방수권법 적용 기간 역시 올해 9월말까지여서 다음 회계연도 입법이 확정될 때까지 마냥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상ㆍ하원 군사위원회가 지난달 주한미군 감축 제한 조항을 포함시킨 2021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긴 했으나, 의회 절차가 남아 있고 최종 관문인 대통령 서명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등을 통해 공화당 지도부를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친정인 공화당에서도 “중국의 영향력만 키우는 발상”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와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수를 둘지는 불분명하다. WSJ는 “주한미군 감축은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산 채로 잡아 먹힐 바보’로 묘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과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에스퍼 국방 장관도 NDS 이행 자료에서 “국방부 업무의 최우선 순위는 중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력을 중국 억제로 재편하겠다는 취지여서 주한미군 감축은 이런 전략에 배치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감축안은 방위비 인상 압박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을 것”이라며 “이 같은 조치 자체가 한국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 당국간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