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역발상

입력
2020.07.17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근 한 야당 의원실로부터 보도자료가 담긴 이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질본 코로나 종식 불가능 의견 국회 공식 제출’. 제목만으론 최일선에서 확산 방지를 위해 주야장천 노력해온 질병관리본부가 사실상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두 손을 들었다는 의미로 읽혔다. 곧바로 이메일 첨부자료를 클릭했다.

눈을 의심했다. ‘코로나19 종식 목표 및 예상 시점’을 묻는 의원실 질의에 질본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유행이 계속될 것”이라고 답변한 게 종식 불가능 의견 제출로 둔갑해 있었다. 더욱이 질본은 “신속한 진단검사와 역학조사를 통한 환자ㆍ접촉자 관리, 의료지원, 사회적 거리두기 및 개인방역 실천 등 코로나19 유행을 억제하기 위한 방역대책을 이행 중”이라며 “향후에도 신속ㆍ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방역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 대응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나가겠다는 설명이었다.

자료를 읽고 나자 손잡이 없는 맷돌을 본 기분이었다. 제목만 보고 ‘질본이 코로나에 항복 선언을 했구나’라고 생각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소위 ‘낚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당 의원으로서 얼마나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싶었으면 방역당국이 초지일관 ‘백신ㆍ치료제 개발까지 국민 개개인이 방역수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 온 말을 이렇게 해석할까 씁쓸했다. 아전인수격 해석에 정색하긴 멋쩍었고, 그저 놀라운 역발상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줬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코로나19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 방역당국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ㆍ코로나와 함께)’ 시대에 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지금의 유행을 버텨야 하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이다. 그 때까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고,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방역 능력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그 능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

다만 이 고약한 바이러스와 6개월을 함께 하면서 답답한 면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지난달 초 처음 학교를 가긴 했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씩만 등교한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주중 4일은 라이더분들께 아이 점심을 맡기고 있다. 학교 교육을 기대하긴 언감생심이다. 오랜 벗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인 일도 꽤 오래 전 얘기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뵙지 못하는 점도 안타깝다. 이런 시기를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막막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곳곳에서 방역수칙을 어기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긴장이 느슨해진 점도 있겠지만 지금의 답답한 생활을 참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못박고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를 강조하는 점은 아쉽다. 거리를 두지 않던 과거로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에 익숙한 이들은 당국의 구호가 와 닿지 않는다. 차라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잠시의 불편을 참아달라’고 호소하는 게 더 많은 국민들이 방역수칙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판을 위한 역발상보다 긍정적인 역발상이 버틸 힘이 되지 않겠는가.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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