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화웨이 잃고도 반도체 시총 1위… 삼성 추격전 '암운'

입력
2020.07.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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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화웨이 상실 위기에도 2분기 매출 29% 신장
애플·퀄컴 등 기존 고객 수주 늘리며 시장1위 굳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최강자인 대만의 TSMC 기세가 무섭다. 주요 고객사로, 전체 매출의 15% 가량을 차지하던주요 고객사 화웨이를 미국 제재 탓에 잃게 됐지만 애플 퀄컴 등 다른 큰손 고객의 수주 물량을 늘리며 사상 최대 수준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이 대만계 기업은 여세를 몰아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에 이은 시스템반도체 1위 등극을 목표로 파운드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TSMC 추격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TSMC는 16일 실적 공시를 통해 올해 2분기(4~6월) 매출액이 3,107억대만달러(12조6,7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늘어난 실적이다. 특히 당기순이익(1,208억대만달러)은 전년 동기 대비 81% 급증했다. 앞서 회사는 지난 10일 6월 실적 발표에서 지난달 매출액이 1,208억7,800만대만달러(4조9,300억원)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40.8% 늘어난 수치로, 지난 3월 이후 석 달 만에 월간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회사 몸값도 치솟고 있다.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4일까지 11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6.5% 급등했다. 기업평가업체 CEO스코어가 전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 기업 시가총액(7월 10일 기준)을 집계한 결과 TSMC의 시가총액은 3,063억4,500만달러(368조4,700억원)로 삼성전자(2,619억5,500만달러)보다도 많은 1위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생산·판매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자 스마트폰·가전 사업도 병행하는 데 비해 TSMC는 파운드리 전문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이 이 회사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TSMC 실적엔 역설적으로 미국의 화웨이 제제가 일정 부분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중순 화웨이의 파운드리 거래를 막는 제재안을 발표하며 120일의 시행 유예기간을 두자 화웨이가 재고 확보를 위해 TSMC에 대량 주문을 넣었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이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경제 확대 또한 반도체 수요를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 성장할 걸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가 보다 주목하는 점은 TSMC가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 기존 대형 고객사로부터 수주량을 크게 늘렸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인텔로부터 공급 받던 자사 맥 컴퓨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칩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언하며 지난달 TSMC에 해당 주문을 넣은 걸로 알려졌다. 퀄컴과 미디어텍은 각각 최신 애플리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865+'와 '디멘시티1000'의 제조를 TSMC에 맡긴 걸로 관측된다. TSMC가 9월부터는 화웨이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는 상황인 데도 시장 우려가 크지 않은 이유다.

일각에선 TSMC가 화웨이 제재 악재에도 승승장구하면서 파운드리 2위 기업 삼성전자의 추격전에 고전이 예상된다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은 TSMC와 반도체 회로를 7나노미터(㎚, 1억 분의 1m) 이하 폭으로 새기는 극자외선(EUV) 기반 초미세공정 경쟁을 벌이는 한편, 최근 경기 평택사업장에 9조원을 들여 EUV 장비를 갖춘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투자 경쟁도 본격화했다.

하지만 시장 후발주자인 데다가 퀄컴, 애플 등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점 등이 시장 점유율 확장에 한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8.8%(2위)로 전분기 대비 3%포인트가량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TSMC(51.5%)와의 격차는 큰 상황이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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