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관객 에이드리언 브로디, 그리고 쇼팽

입력
2020.07.19 14:00
21면

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얼어붙은 요즘, 연주자로서 관객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에겐 특히 기억에 남는, 내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관객이 한 명 있다. 9살 때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초대를 받아 러시아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을 때다. 그 때 '그'를 만났다.

그날 공연장엔 세계적 브랜드 몽블랑이 초대한 명사들로 객석이 꽉 찼다. 2,000명이 넘는 관객들은 모두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들 격식을 차린 복장들이라 연주자인 나보다 더 화려했다. 가끔 그 때 부담스럽지 않았냐고, 기죽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때 어린 내 눈에 비친 그 광경은 오히려 너무 재미있었다. 무대 위에서도 떨리지 않았다. 연주를 끝내고 관객들에게 인사했을 때, 그들 얼굴에 걸린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 기억도 있다.



'그'와의 만남은 그 순간 이뤄졌다. 내 연주가 끝나자마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키 큰 남자 분이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를 해오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확신에 찬' 박수는 받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 대기실에서 게르기예프와 인사를 하면서 조금 전 열렬히 기립박수를 쳐준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는 바로 영화 ‘피아니스트’(2002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애이드리언 브로디였다. 사실 그 때의 나는 기껏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인어공주, 라이언킹, 알라딘에 빠져 있었던 탓에, 그토록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부모님께 브로디를 가르키며 “저 아저씨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박수를 쳐줬어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객석엔 할리우드 배우 양자경과 '007 본드걸'로 유명한 에바 그린 등이 있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공연 뒤 브로디가, 그리고 그가 출연한 영화 '피아니스트'가 궁금해졌다. 부모님과 함께 DVD를 구입해 영화를 봤다. 시작과 동시에 쇼팽의 선율과 마주할 수 있었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모습과 함께 쇼팽의 녹턴(Op.posth)도 흘러 나왔다.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 있던 주인공이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돼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꽁꽁 언 손으로 연주하는 쇼팽 발라드 1번.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아픈 발라드 1번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를 '봤다'기보단 '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쇼팽의 선율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정서와 감정을 대변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 이게 쇼팽의 음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는 내가 일곱 살 때 연주한 쇼팽 왈츠(Op.34 No.3번)와 열여덟 살 때 연주한 쇼팽 녹턴(Op.posth)이 있다. 열여덟 살 때의 연주엔 '피아니스트'를 봤을 때의 감정이 더 많이 녹아 있다.

브로디가 내게 의미 있는 건 그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명 배우여서가 아니다. 그 덕분에 쇼팽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쇼팽이 표현하려 했던 아픔과 기쁨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연주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청중의 영향을 받는다. 나보다도 더 많은 연주회를 찾아가는 이은주씨, 환자를 돌보느라 바쁘지만 늘 공연장에서 만나는 간호사 정여진씨, 다른 연주자의 연주회장에서 옆자리에 앉아 친구가 된 황영윤 아저씨, 부모님의 학원에서 나와 함께 매일매일 음악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민서, 소연이. 시험기간이지만 내 독주회에 찾아준 해림, 은채, 나윤이. 그리고 연주가 끝날 시간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도 찾아와줬던 초등학생 꼬마들의 밝은 미소. 그 모든 것이 더 열심히 연주해야 할 의미를 내게 부여한다. 나는 지금도 무대에서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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