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코로나19로 잃은 내 친구... 그럼에도 삶은 기적이다"

입력
2020.07.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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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기리는 '삶은 축복' 싱글 발매
수익금은 코로나19 최전선에 기부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면서 너무 슬프고 무서웠어요. 전염성 때문에 가족과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혼자 가버린 그녀를 위해 노래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조수미(58)가 15일 공개한 디지털 싱글 음반 'Life Is a Miracle(삶은 기적)'엔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다.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조수미는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러 사람이 작업에 참여해 코로나19로 인한 슬픔을 희망으로 극복하자고 다짐한 노래"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파트리치아. 조수미와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18년 조수미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 주제가 'Here As ONE(평창, 이곳에 하나로)'을 불렀다. 그 곡의 작곡가가 페데리코 파치오티였고 파치오티의 어머니가 바로 파트리치아였다. 조수미는 "작업 첫 날 파치오티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눈이 파랗고 키가 큰 미인이었다"면서 "첫눈에 마음에 들어 친구가 됐다"고 회상했다. 오십대로 나이도 비슷했고, 취미도 관심사도 엇비슷했다. 화가였던 파트리치아는 조수미에게 그림 선물도 많이 했다.

그런 파트리치아가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지난 5월 초 숨졌다. 조수미는 "몇 달째 집에 갇혀만 있다가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화장을 했는데, 그 때 그 날의 슬펐던 감정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당시 이탈리아의 온 거리엔 경찰이 깔려 있었다. 장례식장을 가는 길 조차 쉽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 뒤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조수미는 작곡가이자 친구의 아들인 파치오티에게 "엄마를 위한 곡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너무 슬퍼서 쓸 수 없다"며 파치오티마저 주저했다. 조수미는 "모든 예술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시작된다"고 설득했다.



5월 중순, 그렇게 완성된 곡의 제목은 'Silence love(침묵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이었지만 조수미는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다. 조수미는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지만, 그렇기에 지금 하루하루의 삶이 선물이며 또 기적이라는 얘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도 '삶은 기적'이라 바꾸고 파치오티에게도 함께 노래를 부르자 했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지오반니 알레비에게 맡겼다.

싱글 제작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왕래가 어렵다보니 체계적인 녹음 작업이 불가능했다. 조수미는 "각자 노래 부르고, 피아노 반주도 따로 친 다음 합쳐서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매순간이 고마웠다. 녹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노래의 뜻을 받아들여 기꺼이 '재능 기부'에 나섰다. 이번 곡 수익금 또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이탈리아 베로네시 재단, 그리고 한국의 이화여대 의료원에 기부한다.

가사는 안토니오 칸토가 썼다. 이탈리아어와 영어가 섞였다. 기본적으로 팝 계열인데 뉴에이지풍의 피아노 반주가 곁들였다. 편안하고 밝은 선율이다.이탈리아에서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달 초부터 통행금지가 완화됐다. 그 덕에 로마 참피노 공항 부근에서 뮤직비디오도 찍을 수 있었다. 싱그러운 녹지와 탁트인 벌판이 인상적인 뮤직비디오를 싱글과 함께 공개할 수 있었다.

조수미는 상실감을 추스르는대로 새 앨범 작업에도 나선다.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일정이 연기, 취소됐지만 10월에는 이탈리아 전설의 실내악단 '이무지치'와 협업이 예정돼 있다. 2021년 조수미의 세계무대 데뷔 35주년과 이무지치 창단 7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다. 조수미는 "12월엔 개인적으로 고대하던 파리 샹젤리제 공연이 있는데, 그때 쯤이면 코로나19가 끝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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