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훨씬 가깝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남미나 아프리카와 비슷하다. 때문에 인도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갠지스강, 힌두교, 타지마할, 소 숭배, 발리우드 정도가 고작이다. 최근 들어 ‘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지만, 이 역시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말일 뿐이다.
예전에 인도 책을 내려고 했을 때, 책 제목으로 ‘불교가 인도 꺼라고?’를 편집자와 심각하게 논의한 적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된 종교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불교를 인도와 직결시키는 분들은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지 800년이 넘었다는 점, 또 한국 사찰의 불상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자기 관리 안 된 후덕한 우리들의 모습만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심리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출판 업계에서는 "인도 문화에 대한 책은 필망한다"는 공식이 있다. 내가 도전했을 때 출판업자는 "아무리 스님이라도 안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저주 때문인지 책은 편집자와 나만 재밌고 출판사는 재미없이 끝나고 말았더랬다.
그런데 고대에 동아시아를 매료시킨 인도 예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 인도 예법 하면 일감으로 합장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합장은 불교적인 타당성은 크지만, 동아시아 전체가 열광한 보편은 아니지 않은가?!
불교를 넘어 유교와 도교까지 동아시아 전체가 대동단결한 인도 예법, 그것은 흥미롭게도 ‘절’이다. 현대는 입식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절을 하는 빈도수가 크게 줄었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절은 격식 있는 예법의 대변자였다. 이는 차례나 폐백 등의 큰 의례에는 아직도 절이 빠지지 않는 것을 통해 단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절이 불교를 타고 처음 중국에 전래했을 때, 후한 말의 중국인들은 어마무시한 문화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여우가 웅크린 것 같다"고 수군거리곤 했다. 그런데 당나라라는 세계 최강의 번영국가인 불교 시대를 거치면서, 절은 동아시아의 대표 예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동아시아는 절의 단정한 매력 속에 단단히 빠져든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니, 웅크린 여우 같은 비루한 자세는 이제는 단정한 엄숙(?)으로 변모하게 된다.
사실 절과 함께 동아시아를 매료시킨 예법으로는 향을 피워 올리는 헌향도 있다. 그러나 향은 인도 역시 이집트에서 수입한 외래문화이다. 즉 향은 인도를 거쳐 온 중개무역의 결과라고나 할까?
이외에도 불교를 타고 전래한 인도의 예법에는 꽃을 올리는 헌화와 흩뿌리는 산화도 존재한다. 인도의 고온다습한 기후조건은 1년 내내 꽃이 흐드러지도록 만든다. 여기에 더운 지역 특유의 냄새는 향의 발달과 더불어 헌화와 산화 등의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인도 문화권을 여행하다 보면, 호텔에서 환영의 의미로 꽃목걸이(화만)를 걸어 주거나 로비 바닥을 아예 꽃장식으로 수놓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이들의 꽃을 활용한 문화 전통이다.
동아시아가 절에 매료되었던 것은 종교보다는 예법으로서였다. 자신의 가장 높은 곳인 머리를, 가장 낮은 곳인 바닥에 대려는 낮추는 마음인 하심(下心). 우리의 조상들은 바로 이러한 선한 아름다움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