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영 위기 상황에서 전문경영인만으로는 새로운 트렌드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투자와 인재 영입 등의 큰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걱정부터 앞서는 듯 했다. 코로나19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칫 선장을 잃게 될지도 모를 절박한 심정으로 읽혔다. 김현석 삼성전자 CE(생활가전)부문 사장이 15일 ‘프로젝트 프리즘(ProjectPRISM)’ 발표 1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삼성디지털플라자 강남본점을 둘러본 자리에서 전한 염려는 그랬다. 검찰의 기소 여부 결정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를 헤쳐가긴 어렵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호소로 보였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받는 이 부회장은 조만간 검찰 기소 여부 최종 결론을 앞둔 상태다. 앞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이 부회장에 대해 불기소 권고 의견을 냈지만, 수사팀은 기소 강행 방침을 대검에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2분기에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인 매출 52조원과 영업이익 8조1,000억원 등의 잠정실적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앞날은 어두운 게 현실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스마트폰과 생활가전 부문 등은 고전 중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김 사장은 이날 매장을 둘러보면서 “상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펜트업(Pent-upㆍ보복소비) 효과로 실적이 예상보다 잘 나왔다”면서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4분기부터 어려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엔 한종희 사장(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이재승 부사장(생활가전사업부장), 강봉구 부사장(한국총괄) 등이 동행했다.
김 사장은 또 “세계 경기는 침체돼 있는데 세계보건기구가 내년에도 코로나19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나라마다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제품은 배제하는 자국 보호주의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생산 제품의 90% 가량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각국의 자국 보호주의 경향은 실적에 큰 타격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특히 “4차 산업혁명 현실화가 굉장히 빨라질 것이고 삼성전자가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갈지도 모른다”며 “전문경영인들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들은 큰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이어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리더 역할은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며 몇 가지 일화도 소개했다. 15㎝ 두께의 TV가 일반적이던 시절인 2007년 유럽 최대 가전ㆍIT 전시회인 IFA을 둘러본 이 부회장이 당시 전시용으로 만들어진 18㎜ 두께의 일본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본 후 “앞으로의 트렌트가 될 것이니 소비자들이 살수 있는 가격대로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2009년 LED TV를 출시했고, 그 뒤로 모든 LCD TV가 LED TV로 바뀐 계기가 됐다.
2012년 당시엔 TV 리모콘에는 버튼이 50~80개 있었는데, 이 부회장이 버튼을 10개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버튼을 없애는 대신 음성인식 리모콘을 최초로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삼성이 30년 묵은 숙제를 풀었다’고 극찬할 정도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김 사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 결정을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수 있도록 잘 부탁드린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에둘러 언급했다.
김 사장은 또 코로나19 재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반도체사업부분을 제외한 삼성전자 전체에 재택근무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에 따라 CE부문의 재택근무(한국일보 7월15일자 1면 보도)와 관련,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삼성전자 전체의 재택근무도 검토 중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CE부문만 해도 직원이 5만명인데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감염되기 좋은 조건”이라며 “분산을 시켜야 하는 데 가장 좋은 게 재택근무여서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 사장은 이날 최근 출시한 ‘프로젝트 프리즘’ 신제품 냉장고의 판매동향을 살펴보는 동시에, 곧 출시할 신제품에 대한 의견도 청취했다.
프로젝트 프리즘은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라이프스타일 가전브랜드다. 삼성전자는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작년 6월 ‘비스포크(BESPOKE)’ 냉장고를 공개하며 ‘맞춤형 가전’ 시대를 본격화했고, 올 1월에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세탁ㆍ건조 경험의 혁신을 보여 준 ‘그랑데 AI’, 최근에는 비스포크 개념을 외부에서 내부까지 확장한 럭셔리 냉장고 ‘뉴 셰프컬렉션’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이런 소비자 중심의 혁신은 사업성과에도 크게 기여, 지난해 6월 비스포크 냉장고 도입 이래 포화된 국내 냉장고 시장에서 전년동기대비 30% 가량 늘어난 매출 효과까지 가져왔다. 세탁기와 건조기 역시 그랑데 AI 출시에 힘입어 상반기 누계로 전년 동기 대비 국내 시장에서 각각 35%, 60% 수준 매출 성장을 이뤘다.
김 시장은 이 날 8월말 출시 예정인 소형 전문 보관 냉장고인 ‘큐브(Cube)’와 지난 5월 미국에서 출시한 실외 전용 TV인 ‘더 테라스(The Terrace)’도 둘러봤다. 큐브는 와인이나 맥주, 화장품 등을 각각 최적의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한 냉장고로 침실이나 주방, 거실 등 집안 어디에나 자유롭게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신개념 냉장고다.
더 테라스는 단독 주택 또는 타운 하우스의 정원이나 테라스 등 야외에 설치해 초고화질의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신개념 TV로 8월말 국내에도 도입 예정이다. 이 제품은 IP55 등급의 방진ㆍ방수 기능을 갖춰 실외 환경에 적합한 내구성을 갖췄으며, 한낮에도 선명한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눈부심 방지 기능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