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도 놀란 코로나19의 감염력

입력
2020.07.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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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헬렌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헬렌은 약 3년 전 아이와 함께 1년간 지냈던 미국 동부의 한 작은 해안도시에서 만난 파란 눈의 이웃이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에 열심인 그를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만났는데, 마침 그의 아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래저래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은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임이 헬렌의 메시지에서 읽혔다.

대다수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디에나 이런 노력을 맥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헬렌은 같은 카운티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이 마스크 착용은 커녕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단체로 해변가에서 칵테일 파티를 즐기다 결국 코로나19 확진으로 줄줄이 이어졌다는 최근 소식을 전하며 그들의 부주의함을 비판했다. 미국 곳곳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겉잡을 수 없이 폭증하고 있는 만큼 그가 어떤 심정일 지 공감이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발생이 끊이지 않아 걱정이지만,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속도는 우리와 비교가 안될 만큼 가파르다. 며칠 전 한 물리학자와 통화하다 지난 6개월간 코로나19가 전개돼온 양상이 나라마다 통계물리학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들었다.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는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면 초기에는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환자 한 명이 다른 여러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그러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이 커지고 감염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신규 환자 수는 최대값을 찍은 뒤 점차 줄어들고 전염병 전파도 결국 멈추게 된다. 발생 경과일을 가로 축, 누적 환자 수를 세로 축으로 잡은 그래프에 이 같은 전형적인 전염병 전개 양상을 그려보면 약간 기울어진 에스(S)자 모양이 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의 책 ‘관계의 과학’에선 과거 우리나라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유행할 때 바로 이런 그래프가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은 S자 그래프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연달아 나타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신규 확진 발생이 잠잠해진 것 같았는데 또 환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멈췄다 싶으면 다시 늘어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물리학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나 일본, 이스라엘의 코로나19 전개 양상이 이런 패턴에 잘 들어맞는다고 한다. 메르스 때처럼 S자 그래프가 한 번만 나타난 나라는 아직까지 대만 이외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계물리학이 보는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전개 양상은 남다르다. S자 그래프가 여러 번 그려지긴 하지만, 올라가는 부분이 다른 나라처럼 급격히 꺾이는 곡선으로 나타나지 않고, 기울기가 비교적 일정하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방역 정책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누적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억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마저 마스크 착용을 피하고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베트남전쟁 전사자를 넘어선 미국의 방역 시스템과 구분된다.

올 초만 해도 과학자들은 코로나19 전개 양상도 전형적인 S자 그래프를 그릴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는 감염이 비교적 통제가 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 예상이었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를 이뤘지만, 코로나19는 지역별 감염에 해외유입 감염까지 전파 경로가 훨씬 복잡하다. 나라별 방역 수준도 다른 데다 감염력마저 당초 짐작보다 세다. 조심하는 사람이 늘면 전염병 전파가 멈춘다는 이론은 현실 바이러스의 높은 감염력에 무색해졌다. 수화기 너머 물리학자는 “데이터 분석으로 코로나19가 몇 달 뒤 어떻게 될 지 예측하기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고 걱정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졸업앨범 구입 신청 여부를 묻는 온라인 안내장이 왔다. 한껏 멋 내고 다 같이 학교 곳곳에서 사진 찍으며 인생에 다시 없을 추억을 만들 시기인데, 코로나19로 단체사진은 촬영조차 불투명하다. 먼저 앨범 제작을 시작한 이웃 초등학교에선 개인사진을 합성해 만든 단체사진을 넣는다는 소식이다. 내년 봄 아이 중학교 입학식엔 가볼 수 있을까. S자 그래프도, 단체사진 없는 졸업앨범도 올해까지로 족하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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