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검찰개혁

입력
2020.07.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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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던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봉합됐다. 검언 유착 수사와 관련해 검찰총장의 백기 투항인 것처럼 보이나, 이번 사태를 통해 검찰개혁의 민낯은 드러났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한다고 하면서, 법률이 보장한 총장의 검사 관할권까지 박탈해버리는 걸 '개혁'이라고 포장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정치적 압력이 '지휘'라는 이름으로 검찰에 행사될지 가늠조차 안 된다. 서울지검장은 독립적 수사종결권을 요구하며 상관인 검찰총장의  감독권을 거부하다시피 했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많은 또 다른 하급 검사들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검찰총장에게 대놓고 대들지 이 또한 가늠이 안 간다.  

이 와중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CEO가 기업합병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불기소처분하라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는데도 검찰은 이를 따르지 않을 모양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2018년에 도입된 개혁 제도다.  무작위로 추첨된 각계각층 전문가가 해당 사건에 대한 회피ㆍ기피 절차를 거친 후 기소 여부를 권고하게 된다. 이런  민주적 통제 장치를 통해 도출된 권고까지 무시하는 것이 과연 개혁이란 말인가. 

이 모든 사태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개혁이 아니라 권력 장악이기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과제인 검찰개혁이 마치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처럼 변질되고 있다. 주인공 가족은 고용주의 집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를 파고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즉 일자리 이권)을 성취한다. 개혁의 결실 1호로 내세우는 공수처의 설치는 고위공직자들이 연관된 정치적 사건을 더욱 정치적으로 처리해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2호인 검찰 인사 개혁도 검찰 수사가 청와대를 향하자, 검찰총장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식으로 처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처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청와대를 수사하는 건 개혁세력을 억압하는 행위'라는 프레임까지 씌웠다.  성실한 운전사를 성 도착증으로 몰아 내쫓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가정부를 폐렴환자로 조작한 기생충의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제 민주적 통제 장치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까지 무시당하면, 국민들로선 '개혁 말고 다른 계획이 있구나'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진행된 검찰개혁의 행로를 보면, 어쩌다가 기생충을 집 안에 들였더니 인적 쇄신을 외치며 실제로는 불손한 의도의 가족들을 몰고 들어와 영원히 점령하려 드는 시나리오가 연상된다. 집주인처럼 피를 흘리고 쓰러져 나가야, 영화 같은 현실은 비로소 끝이 날 것인가. 검찰과 청와대의 죽기 살기 혈전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겨울 뿐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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